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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김대중을 다시 생각하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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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나루히토 일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기미가요(君が代)가 나왔다. 기미가요는 일본 국가(國歌)로서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졌다. 그 노래가 서울 한복판에서 처음 연주됐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펄쩍 뛰었다. ‘굴종 외교’ ‘치욕적 장면’이라며 굴욕을 전제로 한 양국 관계 정상화는 동의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민망한 일이지만 기미가요는 문재인 정부 이곳저곳에서도 울려 퍼졌다. 평창올림픽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상식에서 기미가요가 송출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조사를 벌였지만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정 국가를 제외할 수 없는 국제 대회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에서도 기미가요는 연주됐다. 그러나 누구도 굴종과 굴욕을 논하지 않았다. 또 있다. 1999년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도 기미가요가 연주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민주당 정권에서 연주된 기미가요만 화합과 평화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 정권 역시 굴종과 굴욕의 역사였나.



전범기(war crime flag) 논란도 유사하다. 2018년 제주 국제 관함식 당시 한국 해군은 일본 해상자위대기가 전범기라는 이유로 이를 게양하지 말도록 요청했으나 일본은 거부하고 불참했다. 문제는 전범기가 무슨 국제법상 개념이 아니라 한국에서 만들어진 인터넷 신조어라는 점이다. 식민 지배의 고통을 상기하게 하는 제국주의의 상징이 법과 역사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발명과 창조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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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강제 침탈의 책임과 피지배의 아픔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러나 반일 감정을 고취하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생산·전파한다면 소통과 이해는 바라기 힘들다. 이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친일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분위기 탓에 국민의 자정 작용마저 마비될까 우려된다.

김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햇볕 정책 하나 때문만이 아니다. 노벨위원회가 밝힌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본과 화해를 위한 노력’이었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오부치 전 총리와의 공동 선언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공유했고 이를 토대로 양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지난날을 사죄했고 경제 협력 방안까지 마련했다.

김 전 대통령 이후 진보 정당은 어떻게 됐나. 스포츠는 정치와 무관한데도 반일 정서를 부추기며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다. 정부가 죽창가를 부르면서 불매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할 말 없으면 반공만 찾는 구태와 다를 게 없다. 둘 다 후지다.

김 전 대통령을 다시 생각한다. 동아시아 평화 구현을 통해 대한민국의 진일보를 그렸던 추진력을. 과거에 갇히기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을. 반공 보수의 몰락과 한계를 그대로 닮아가는 진보가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을. 진보가 김 전 대통령을 닮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해당 칼럼은 서울경제 2월22일자에 게재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기고문입니다.


주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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