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과거에는 시대의 담론을 형성했어요.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은 대부분 소설이었죠. 이제 웹툰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양상이지만 시대와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책이 담고 있다면 분명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책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대중은 이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출판사 문학동네 편집자로 16년 동안 일하다 지난해 문학동네의 임프린트 출판사 이야기장수를 설립한 이연실(사진) 대표는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책만이 말할 수 있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훈·하정우 등과 작업하며 ‘베스트셀러 제조기’ ‘출판계의 미다스 손’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가 출판사의 사내 벤처기업인 임프린트 출판사를 차린 건 어쩌면 당연하다. 편집자의 정년은 45세라는 게 업계의 암묵적인 분위기인 탓에 1984년생인 그에게도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평소 백발에 에코백을 메고 현장을 누비며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현직’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그다. 출판 업계가 열악하다 보니 연차가 높아져도 그만큼 연봉을 올려 줄 수 없어 미국·유럽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백발의 편집자’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다.
용기를 내기까지 고민도 많았지만 작가를 만나고 책을 만드는 일을 평생하고 싶다는 꿈이 더 강했기에 이야기장수를 설립했다. 출판계에서는 이미 ‘촉’이 좋기로 유명한 그답게 첫 책부터 베스트셀러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다룬 여성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그림책 ‘전쟁일기’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1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중쇄를 찍으면 성공이라고 할 정도로 출판 시장은 열악하고 출판사명을 이야기장수 대신 ‘중쇄출판사’로 정할까도 생각했을 정도로 출판사와 작가에게 중쇄는 중요하고 간절하다. 신생 출판사의 첫 책이 1만 부가 팔린 것은 이례적이다. 베스트셀러 제조기, 스타 편집자의 감이 적중한 것이다. 그는 “사실 책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기 때문에 책도 빨리 내야 팔릴 수 있겠다 싶어서 외국 도서의 경우 몇 달이 걸리지만 한 달 정도 만에 출간을 했다”며 “전쟁이 끝날 무렵에 나와야 이 전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가 빠른 출간을 독촉한 것은 아니었지만 간절함이 보였다”며 “굉장히 슬픈 이야기인데 분명 이 이야기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가치,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는 꼭 책으로 만들겠다는 철학이 통한 셈이다. 지난해 4월 창립한 후 신간 6권을 출간했고 모두 중쇄를 찍을 수 있었던 것도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는 이 대표의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그는 편집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김훈과 배우 하정우를 꼽기도 했다. 김훈은 엄격한 이미지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어른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아는 김훈 선생님은 아버지가 없는 저한테는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어떤 자리에서 김 선생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웃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정말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걷는 사람 하정우’와 작가 하정우 역시 그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보통 유명인이 책을 낼 때는 이력의 일부로 생각하고 빨리 출간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책을 만드는 그 순간 그는 작가 그 자체였다”며 “제본을 해가면서 몇 달을 교정본을 보고 책에 넣을 사진도 화보 같은 게 아닌 자신의 폰에 있는 연예인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사진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의 책은 여전히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그는 “신창원과 유영철을 검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여형사의 이야기가 다음 달에 나올 예정”이라며 “주간 문학동네에서 연재 중인 김혼비·황선우 작가의 ‘최선을 다 하면 죽는다’도 출간 예정”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