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통시장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가치소비'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가치소비란 '브랜드나 광고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가치 판단을 토대로 물건 및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 방식'을 뜻한다. 자신의 신념을 소비로 표현하는 미닝 아웃, 착한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착한소비,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는 그린슈머 등이 이에 해당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치소비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소비나 무조건 아끼는 알뜰소비와는 확연히 다르다.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이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거나 취향과 만족도가 높은 기업의 제품을 소비한다. 또한 해당 제품 구매가 자신의 신념과 부합하는 행위라고 여긴다. 이에 기업들은 자사 브랜드에 맞는 가치소비 키워드를 찾아내고, 이를 제품에 반영해 아이덴티티로 승화시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확고한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설립되어, 가치소비가 주목받기 전부터 가치있는 활동을 이어온 기업들을 알아봤다.
▶"쓰레기로 만든 가방 사세요", 프라이탁(FREITAG)
스위스의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은 버려지는 트럭의 방수천을 이용해 가방을 제작한다. 이 브랜드는 5년 이상 사용했던 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든다. 가방 끈은 자동차 안전벨트를 사용하고, 가방 마감은 자전거의 고무 튜브를 활용한다. 트럭의 험난한 여정을 함께 했던 방수천이기에 여기저기 흠집이 많지만, 프라이탁 가방을 구매하는 이들에게는 흠집도 하나의 훈장일 뿐이다. 방수천 하나로 여러 개의 가방을 만들지만 디자인이 모두 제각각인 것도 매력 포인트다. 모든 제품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디자인인만큼 개성을 나타내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프라이탁은 이미 유명한 브랜드로 통한다.
▶"화장품이 아닌 가치를 판매합니다", 러쉬(LUSH)
러쉬는 가치소비라는 개념조차 없던 2002년 한국시장의 문을 열고, 20여 년간 브랜드의 이념과 가치를 지켜왔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 및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정직한 재료를 사용해 모든 제품을 손으로 만들고 공정거래, 인권 보호, 최소한의 포장 등으로 브랜드가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러쉬가 한국에 들어온 2000년 초반에는 아무도 가치소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쉬는 화장품 동물 실험이 불가피한 중국 시장 진출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들의 가치를 고집했고, 그 결과 가치소비를 이끄는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소비자들은 이제 화장품이 아닌 러쉬의 가치를 구매하고 있다.
▶"비타민 하나를 사면 하나가 기부됩니다", 비타민엔젤스
비타민엔젤스는 제품이 판매되면 판매된 수량만큼 기부를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소비자가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등 비타민엔젤스 제품을 하나 소비하면 다른 하나는 독거어르신, 결식아동 등 취약계층에 기부한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비타민엔젤스가 추구하는 가치는 영양불평등 해소다. 요즘엔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어떤 끼니를 먹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은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비타민엔젤스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원료 우선주의’라는 가치를 지키며 전세계적으로 검증된 원료를 사용하고, 생산하는 모든 제품의 원재료 원산지를 공개한다. 지난 10년 간 하나를 사면 하나가 기부되는 시스템을 통해 비타민엔젤스가 국내외 취약계층에 기부한 영양제는 약 85억원 상당이다. 이 수치는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엔젤스를 찾았음을 의미한다.
▶"매출의 1%는 지구에 돌려드립니다", 파타고니아 (PATAGONIA)
파타고니아는 1972년 의류사업을 진행한 이후 꾸준히 환경 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환경 피해를 줄인 기능성 원단을 개발하고 모든 면제품을 유기농 목화로 제작하며, 매년 매출의 1%를 환경 보존과 복구를 위해 사용하는 지구세(Earth Tax)로 사용한다. 지난 2022년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본인과 가족이 보유한 4조원이 넘는 회사의 지분을 환경보호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 재단에 양도하면서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일각에서 세금을 줄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지만,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전세계 소비자들은열광했다. 지금까지 파타고니아가 일관되게 지켜 온 브랜드 가치관을 알고,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파타고니아는 가치소비의 대표 브랜드로 남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제 소비자들은 오랜 시간 가치 있는 활동을 해온 기업들을 알아보고 지지한다. 더 나아가 본인의 소비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 환경을 보존하는 일에 잘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며, 해당 기업의 이념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끼면 소비할 가치를 느끼지 못 하고 떠나간다. 따라서 가치소비는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장기적인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앞으로 기업들은 각자의 기업 철학을 가진 제품을 만들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소비자와 더욱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은 오랫동안 '가치있게 소비'하면서, 어쩌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기업을 설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치소비를 이끄는 대표 브랜드들의 역할은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