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꿀벌 80억 마리 정도가 죽거나 사라졌습니다. 이는 꿀벌이 주는 이상기후의 시그널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봄날 같은 고온이 이어지다 갑자기 한파가 닥쳤습니다. 꿀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상기후의 예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야생식물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결국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1일 정철의(사진) 한국양봉학회 회장(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꿀벌은 기후변화의 지표생물”이라며 “꿀벌의 폐사와 생태 등 변화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80억 마리의 꿀벌이 폐사하는 이유로 높아진 기상 변동성, 잦은 기상 이상 현상 등을 꼽았다. 그는 “꿀벌은 월동 휴면을 하지 않고 제한된 공간에서 약 1만 5000마리 이상이 모여 서로 열을 내면서 추위를 견디는데 이 과정에서 기상의 변동성이 너무 클 경우 꿀벌들은 월동에 실패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꿀벌의 월동 생존은 기후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는 “변온동물로 환경에 따라 활동과 생리 대사가 결정되는 꿀벌 집단은 마치 포유동물처럼 벌통 내부의 온도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며 “따라서 외부의 환경 변화가 심할수록 꿀벌들은 벌통 내부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돼 더 빨리 늙어가고 빨리 죽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또 꿀벌은 식물들의 번식을 돕는 화분 매개 기능을 해 식물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꿀벌이 폐사할 경우 식물 생태계는 커다란 혼란을 겪고 결국 농작물 생산 감소 등의 결과로 이어진다. 정 회장은 “꿀벌의 활동으로 인한 화분 매개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야생의 식물 생태계는 큰 교란을 겪는다”며 “꿀벌들이 사라진다면 식물의 번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각종 종자와 과실의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많은 동물들의 먹이가 부족해져 생태계 교란은 더 가중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먹거리로 사용하는 농작물은 약 100여 가지 정도 되는데 그중 75% 이상이 꿀벌 등에 의한 화분 매개를 통해 생산되고 있다”며 “즉 꿀벌이 없어진다면 75% 정도의 농작물 생산이 줄어들고 가격도 매우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정 회장은 이러한 현상이 식량 공급의 불균형과 빈부 격차에 따른 건강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돈이 많은 사람들은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과일을 살 수 있겠지만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식량 공급의 불균형은 영양 공급의 불균형으로 이어져 국민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섭취하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의 약 30% 이상이 꿀벌의 화분 매개로 생산되는 농작물에 의해 공급되며 비타민과 미네랄 공급이 부족할 경우 1년에 약 50만 명 이상이 조기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보고됐다고 정 회장은 설명했다.
고도의 사회성을 이루면서 생활하는 ‘고등동물’인 꿀벌에 매료돼 ‘꿀벌 교수’가 된 그는 초기에는 많이 쏘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알면 알수록 꿀벌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우리가 보호해줘야 되는 연약한 생물인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꿀벌 석학’으로 통하는 그의 연구는 해외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은 수박·멜론·사과 등이 유명하고 다양한 밀원식물(꿀벌에 꿀과 꽃가루를 제공하는 식물)이 존재해 양봉이 활발하지만 생산 기술력은 낙후됐다”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즈베키스탄의 양봉을 지원하는 연구를 하면서 우리 연구팀이 가지고 있는 고급 기술들을 전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K팝과 K드라마가 인기인 우즈베키스탄에서 K양봉으로 불리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