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붓으로 그리는 대신, 동판 위에 기계로 긁고 깎는 방법을 택했다. 동판에 새긴 그림인 동판화(銅版畵)다. 작업은 고되지만 금속성의 날카로운 흔적과 특유의 광택이 섬세한 의도를 담기에 더 적합했다.
동판화로 자연을 그리는 서양화가 손홍숙의 개인전 ‘자연과 나(Nature & I)’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인 서울 중구 광희동 갤러리 라온에서 30일까지 열린다.
손 작가는 싱그러운 자연에서 찾아낸 자작나무와 연꽃, 추수한 곡물과 옥수수 등을 그린다. 차가운 동판이 자연을 품으며 온기까지 덧입는다. 자연 예찬을 곱씹어 온 작가는 동판화 작업을 계기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기계와 손을 함께 사용한 것이 도움됐다.
이학박사로 숭의여대 가족복지과 교수를 지낸 그는 1982년부터 그림에 입문했고,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서양화 실기전문과정을 수료하며 기량을 갈고 닦았다. 2008년 교수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는 창작활동에 더욱 매진하는 중이다. 손 작가는 “지금까지 구상화 형태의 그림을 많이 그려왔지만 동판화를 시도하면서 주제도 달라졌다”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인간생태계 이론’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같은 소재라 할지라도 어떤 시각, 어떤 기법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다른 형태의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작의 주제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은 환경과 유전적 요인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과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빛을 내고, 어떤 사람은 자기 고유의 멋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이 기계로 갈아서 새겨진다”면서 “자연적 인간 체계 속에 나도 그 속의 하나임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