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기업 투자를 빨아들이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맞불을 놓기 위한 핵심원자재·탄소중립산업법 초안을 공개했다. 일부 핵심 원자재의 중국산 의존도가 최대 90%에 달하는 현지 진출 우리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16일(현지 시간)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핵심원자재법에 따르면 2030년까지 종류·가공 단계를 불문하고 특정한 제3국산 전략적 원자재 수입 비율을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EU는 현재 희토류·마그네슘·리튬 등 주요 원자재의 90% 이상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법안에는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개발도상국 등 제3국과 원자재 관련 파트너십을 구축해 새로운 원자재 공급망을 확보할 계획이다. ‘전략적 프로젝트’를 별도로 식별해 신규 채굴·가공시설 인허가 및 재활용 사업에 대해서는 신속한 허가와 재정 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원자재 소비 및 생산국을 망라하고 EU와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들만 참여하는 ‘핵심 원자재 클럽’을 만들어 공급망 안정을 꾀할 계획이다.
이 외에 원자재를 EU 내에서 조달하는 노력도 강화한다. 전략원자재의 경우 2030년까지 EU 전체 연간 소비량의 역내 채굴량을 최소 10%, 가공량은 40%, 재활용 비율은 15%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특히 집행위는 전기차 모터의 필수 부품으로 꼽히는 영구자석에 대해서는 별도 조항에서 ‘재활용 비율 및 재활용 가능 역량’에 관한 정보공개를 의무화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관련 기업은 특정 제품에 재활용된 영구자석의 비율은 물론 향후 영구자석을 분리해 재활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세부 정보까지 공개해야 한다. 당장은 정보를 대외에 알리는 수준이지만 앞으로 재활용 비율을 의무화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중·장기적으로 유럽에 진출한 한국 자동차 업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공급망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500명 이상, 연간 매출 1억 5000만 유로(약 2100억 원) 이상인 역내 대기업에 대해서는 공급망 감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이 역시 현지에 진출한 국내 주요 대기업도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탄소중립산업법에는 EU 내 친환경 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대책이 담겼다. 법안은 태양광·배터리·탄소포집 및 저장 등 8가지를 ‘전략적 탄소중립 기술’로 규정했다. 이 8가지 산업의 역내 제조 역량을 2030년까지 40%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관련한 역내 신규 사업에 대해서는 허가 기간을 최대 18개월을 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신규 사업을 위한 투자 시 보조금 지급 절차도 간소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U에서 신사업의 허가를 받으려면 길게는 수년씩이나 걸려 외국 기업들이 애를 먹어 왔는데 이 문제는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이 법안을 통해 EU는 녹색산업에서 리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배터리·자동차 업계도 긴장 속에서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배터리 3사는 폴란드와 헝가리에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주력 제품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주로 쓰이는 수산화리튬 중국 수입 의존도는 지난해 말 기준 90%에 달할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업계는 미국·호주·칠레 등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도 “전기차 부품인 영구자석의 재활용 비율 공개 조항이 들어갔지만 우려했던 역외 차별 조항은 없다”면서 “향후 나올 세부 이행 방안에 따라 전략을 수립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