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공정한 진료를 위한 해법

허창언 보험개발원장





반세기 만에 이룬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이제는 K컬처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면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 보험산업의 모럴 해저드도 그중 하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1조 818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보험사의 ‘눈먼 돈’은 사기꾼의 주요 표적이 되기도 한다. 몇 달간 쥐꼬리만큼의 보험료를 내고 수백 배의 보험금을 타내면 로또 같은 횡재가 된다.

보험은 선의에 기반해 다수의 십시일반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제도다. 하지만 악용에 취약하다. 도덕적 해이를 뜻하는 모럴 해저드도 보험 용어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기 범죄율 1위 국가다. 특히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자동차보험에서 이러한 사기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경미한 사고를 당한 경상 환자들은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검사를 통해서도 명확한 증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일부 병원과 환자들은 이를 악용해 과잉 진료로 더 많은 보험금을 노린다. 일부 한방병원에서는 경상 환자들에게 소위 ‘세트’ 치료를 권장하며 과잉 진료를 조장하기도 한다. 보험개발원의 추정에 따르면 경미한 사고에서 연간 약 7000억 원에서 1조 3000억 원의 치료비가 더 나가고 있다. 차량 한 대당 3만 4000~6만 2000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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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은 무엇일까. 공정한 진료를 이끌기 위한 장치의 도입이다. 다친 사람에게는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되 과잉 진료는 막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 줄어든 보험금은 불필요한 보험료 상승을 억제해 보험 가입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상 환자의 진료 절차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에서는 문진을 통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부상의 경우 환자를 안심시키고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자연적으로 회복될 수 있음을 교육한다. 이후 환자의 호전 여부를 관찰해 필요시 추가 치료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호주는 엑스레이 검사 등을 통해 부상의 심각도를 평가하고 심각한 부상이 아니면 권장하는 치료 방법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독일과 스페인에서는 보험금 지급시 공학적 측면에서의 사고 심도를 고려한다. 부딪힌 자동차의 속도 변화가 특정 값 미만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상 위험이 없다고 판단한다. 추돌 사고에서 범퍼만 손상되는 사고의 경우 탑승객의 부상 위험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판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진료비 심사시에 상병명에 따른 치료의 적절성과 함께 공학적 분석도 함께 고려한다면 경상 환자의 과잉 청구 예방에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방보험사기방지법이 제정돼 45개 주에서 보험사기를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가중처벌한다. 일례로 뉴저지주는 보험사기의 최고 형량을 20년으로 정하는 등 “보험사기가 적발되면 반드시 감옥에 가게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보험사기는 선량한 계약자에게 피해를 주는 중범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우리나라도 보험사기 대응력 강화와 법 실효성 제고를 통해 사기 적발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 선량한 대다수의 국민에게 보험료 부담이 전가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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