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A씨는 최근 초등학교 자녀와 대화하던 중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올 6월부터 만 나이를 쓴다’는 선생님 말씀에 같은 반 친구가 느닷없이 ‘앞으로 형이라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같은 학년인데’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A씨는 “만 나이를 쓰더라도 형이나 누나 등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고 교육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건 다른 듯 보인다”며 “어린 나이부터 먼저 ‘서열 정리’부터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만 나이 문화가 제대로 정착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들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이른바 ‘만 나이 통일법(행정기본법 및 민법 일부 개정법률’ 시행에 대비해 교육 등 준비작업에 나서고 있다. 생일이 언제인지에 따라 같은 학년이라도 학생들 나이가 제각각 달라져 자칫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국가와 달리 나이에 따른 호칭 문화가 중요시되고 있는 만큼 시행 초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안내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이 달초 ‘만 나이 시행에 대한 교육·홍보를 진행하고 실시 결과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전국 시도교육청에 보냈다. 이는 법제처가 만 나이 사용 문화의 정착을 위해 교육부에 협조 요청을 한 데 따른 것이다. 만 나이 사용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다. 만 나이를 법적·사회벅 기준으로 통일해 나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오는 6월 28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오랜 기간 만 나이를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내 학교들은 기존 나이를 기준으로 학년 단위를 구성, 학생들 사이 교우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두 달 뒤 부터는 같은 학년이라도 생일이 6월을 지났는지에 따라 나이가 달라져 학생들 사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같은 우려는 법제처가 교육부에 안내한 교육·홍보자료에도 고스란이 담겨있다. 법제처는 "만 나이를 사용하면 같은 반에서도 생일에 따라 나이가 다를 수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친구끼리 호칭을 다르게 쓸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만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친구로 지내면 된다는 게 법제처 설명이다. 하지만 법이 시행되기도 전부터 학생들 사이 만 나이를 기준으로 이른바 ‘호칭 정리’를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 초등학생 아버지는 “만 나이를 이용해 으스대는 친구들이 벌써부터 있다고 한다”며 “만 나이를 시행하려면 외국처럼 호칭 없이 이름을 부르는 문화까지 같이 정착돼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도 “시행 초기에는 동급생끼리 나이를 기준으로 위계를 나누는 현상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행 초기, 혼란에 따른 학생 사이 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법 취지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도기는 있겠지만 만 나이 사용이 잘 정착만 된다면 오히려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가 서서히 약화될 수 있는 만큼 시행에 맞춰 올바른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며 만 나이 시대에 적합한 문화를 재정립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라며 “잘 정착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가 점차 흐릿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