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韓 블록버스터 치료제 '0'…제 역할 못하는 바이오 산학연 생태계

[미리보는 서울포럼 2023]

■보건의료·경제·안보 핵심 첨단 바이오 시대 열자

<하> 혁신 없인 퍼스트 무버도 없다

돈 줄 막힌 기업들 신약 지지부진

특례상장 1호 셀리버리 거래정지

신뢰마저 흔들리며 투자 얼어붙어

산학연 협력·대기업-스타트업 연계

K바이오백신펀드 조속히 결성 등

정부 주도 '민간투자 유인책' 절실


“솔직히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의 호황 때 나름대로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고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지만 바이오 산업이 단기간 내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 만큼 묵묵하게 길만 걷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업계에서 이런저런 사건 사고까지 겹치다 보니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을 더 받고 싶어도 이상한 소문이 날까 무서워서 버티고 있습니다.”








바이오 업계에 위기가 닥쳤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투자는 줄어들고 이런 저런 사건들이 터지며 업계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에 불신이 팽배하다. 급기야 일부 기업은 감사 의견 문제로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렸다. 코스닥 성장성 특례상장 1호 기업인 셀리버리의 거래 정지가 대표적이다. 성장성 특례상장으로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19개 회사 중 14곳이 제약·바이오 기업인 만큼 업계에 주는 충격이 크다. 실패한 임상시험 결과를 자의적으로 성공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잦아 ‘바이오는 다 사기’라는 인식마저 생겼다.

3일 벤처케피털(VC) 업계에 따르면 최근 투자 위축으로 가장 타격을 입은 업종으로 바이오가 꼽힌다. 신약 개발에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돈줄이 끊긴 셈이다. 미국 지역은행의 잇따른 파산 여파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이어지며 투자 분위기도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다.



업계는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발행으로 버티는 상황이다. 코스닥 상장사 셀바스헬스케어는 지난달 7일 341억 원의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운영자금이 264억 원, 채무 상환이 77억 원이다. 4월 18일의 에이프로젠H&G(200억 원)과 19일의 메지온(500억 원) 역시 운영자금 목적으로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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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파고들면 그 안에 지지부진한 신약 개발이 있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자체 개발에 성공한 신약은 36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품목 허가를 받은 의약품도 8개에 불과하다. 허가를 받는다고 다 잘 팔리는 것이 아니다. 국산 신약 중 글로벌 블록버스터 치료제(연매출 1조 원)에 근접한 의약품조차 없다. 그나마 SK바이오팜이 FDA 승인을 받고 유통 중인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가 지난해 미국 매출 1692억 원을 기록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 신약 기술수출이 이어지고 있지만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상장과 투자 유치만을 위한 실적 만들기 차원의 기술수출 발표가 나오기도 한다.

실패한 임상시험 결과를 자의적으로 성공인 양 왜곡·날조하는 것 역시 K바이오의 악폐습 중 하나다. 주 평가 지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보조 평가 지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라고 주장하는 정도는 양반이다. 주주설명회(IR) 등에서 통계를 교묘하게 ‘마사지’하거나 완전히 실패한 임상시험을 ‘대성공’이라고 호도하는 일이 지나치게 잦다.

전문가들도 제 역할을 못한다. 국내 신약 개발의 성공 사례가 드물다 보니 비교 기업군을 찾기 어렵고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된다. 게다가 시장 자체가 좁다 보니 평가하는 이와 평가받는 이 사이의 인연이 개입되는 사례도 많다. VC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바이오 애널리스트와 바이오벤처 대표가 알고 보니 대학교·대학원 선후배였고 같은 실험실에서 교수와 대학원생으로 있었다는 등의 사례가 파다하다”며 “이래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겠느냐”고 꼬집었다. 이런 실정이니 일부 주주가 지나치게 긍정적이게 해석한 블로그·유튜브 영상이 마치 성경처럼 떠받들어지는 일이 대부분의 바이오 기업에서 나타난다.

바이오헬스 생태계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이오 산업 육성을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었지만 성과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도 부진한 바이오 생태계에 있다. 대학·연구기관·기업의 협력 체제, 글로벌 생태계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SK바이오팜·롯데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과 같은 대기업과 바이오 스타트업 사이의 연계도 늘려야 한다.

아울러 한국 바이오 기업 대다수가 VC와 IPO를 통해 자금을 수혈받는 특징을 고려, 상장 과정에서 국가 주도로 전문가 풀을 구성해 전문성을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 기업의 옥석을 분명히 가려 가능성 있는 기업이라면 시장에 진입해 필요한 사업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 시스템이 지원해주는 식이다.

지지부진한 K바이오백신펀드도 조속히 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바이오 산업을 키우겠다며 발표한 K바이오백신펀드는 운용사 선정 이후 8개월이 지났는데 펀드 결성조차 되지 않고 있다. 최소 결성 규모의 75% 이상의 자금이 모이면 우선 펀드 결성과 투자 개시를 할 수 있도록 ‘조기결성방식’을 허용했지만 이만큼의 투자금도 모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생색내기용 정책 대신 실제 투자 집행을 위한 구체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민간 투자를 이끌어낼 구체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세종=우영탁 기자·이재명 기자·이승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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