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일까지 4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처벌 보다는 계도 중심으로 현장을 지도하면서 최소 1년 이상의 준비시간을 줘야 한다”. 지난 2021년 9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령이 제정된 이후 중소기업중앙회가 내놓은 논평의 일부다. 결국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은 내년 1월로 미뤄졌다.
1년이 넘게 흐른 현재 중소기업계에서 다시 이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업계는 여전히 제대로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 적용시기를 더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전 문제만큼은 중소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고, 이미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남았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만성적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의 경우 안전 문제를 가볍게 여기면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근거로 제시된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계의 빡빡한 여건을 감안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문 변호사는 18일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합리적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중대재해법의 입법 목적이 예방보다는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실무 변호사로서 다수의 기업들을 접한 결과 중대재해법 시행을 계기로 기업의 경영진이 안전 관리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에 효과를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올 1분기 산업재해 동향을 살펴보면 올해부터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기업들의 사고는 줄었지만, 내년 1월로 적용이 미뤄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올 1분기 산재사고 동향에 따르면 총 사망자는 128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47명)보다 19명(12.9%)이 줄었다. 업체 규모별로 나눠보면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사망자가 전년 동기(68명)보다 19명이 줄어든 49명으로 조사됐다. 반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79명이 사망해 작년(79명)과 차이가 없었다. 중대재해법을 적용한 사업장에서만 사망 사고 발생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시행될 경우 사망 사고가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게 하는 수치다. 하지만 제도 도입의 취지와 결과를 떠나 현실적으로 소규모 중소기업들의 대응 여력아 충분치 않다는 목소리 또한 크다. 실제 중기중앙회가 50인 미만 중소기업 250곳을 대상으로 내년 1월 중대재해법 준수가 가능한지 물어본 결과 59.2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법 적용을 얼마나 더 유예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47.2%가 1년이라고 답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이 내년 1월로 성큼 다가왔지만 아직은 준비가 부족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관계되어 있는데다 올 1분기 산업재해 동향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만큼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만 현실을 감안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준원 숭실대 교수는 “5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사망 등 산재를 감축할 필요성이 크다”면서 “정부 지원을 대대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안전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비용과 교육 지원을 강화하고, 스마트 안전장비 보급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사망 재해 발생 우려가 높은 작업이나 공정은 로봇을 설치해 자동화함으로써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중소사업장에 적합한 스마트 안전기술을 속도감있게 개발하고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소기업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문제인만큼 기업도 “여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피할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질적으로 인력 부족을 겪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안전 이슈를 뒷전으로 미루면 인력부족 문제 해결은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희태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원은 “중소기업은 중대재해법 대응을 위해 안전 보건을 최우선 핵심가치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