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쌀, 사케로 이름난 니가타현 나가오카
요넥스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다. 배드민턴에서는 세계 1위이고 테니스, 스노보드, 골프 등에서도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카본 소재 관련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골프 선수 중에서는 김효주가 2014년부터 요넥스 클럽을 사용 중이고, ‘레슨의 신’ 임진한과 ‘골프 여왕’ 박세리도 홍보 대사로 활동 중이다.
요넥스는 1946년 일본 니가타(新潟)현 나가오카(長岡)시에서 탄생해 지금도 그곳에서 생산을 한다. 일본 지방의 작은 회사가 어떻게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 도심을 벗어난 신칸센 열차가 서서히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창밖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갔다. 얼마쯤 달렸을까.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가 싶더니 멀리 고봉에는 여전히 흰 눈이 쌓여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배경으로 유명한 니가타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해안과 평야, 산이 고루 있는 니가타현은 일본에서 최고의 적설량을 자랑하는 곳이다. 겨울철 시베리아 기단이 동해의 습기를 잔뜩 머금은 뒤 이곳의 높은 산들에 막혀 머물면서 눈을 잔뜩 퍼붓는데 그 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폭설이 한 번 쏟아지면 1~2m는 예사다. 눈으로 유명한 홋카이도를 능가한다. 높은 산에는 5월까지 눈이 쌓여 있다고 한다.
겨울 동안 쌓인 눈은 봄이 되면 녹으면서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니가타는 그 물로 재배한 쌀과 사케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고시히카리는 일본 내 최고급 품종 쌀로 쳐준다. 국내에서도 그 맛을 알아준다. 사케 역시 애주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요넥스가 탄생한 나가오카시는 니가타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일본에서 가장 긴 시나노(信濃)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열차에서 내려 역 안에 들어서자 한쪽 벽에 지역의 특산품 등을 전시해 놨는데 그곳에서도 요넥스를 만날 수 있었다.
요넥스 기술의 심장부를 보다
나가오카의 요넥스 공장 2곳에서는 골프클럽을 비롯해 배드민턴과 테니스 라켓, 스노보드 등을 생산한다. 요넥스는 대다수 골프용품 브랜드와 달리 샤프트도 직접 생산한다. 시 청사가 있는 도심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떨어진 요넥스 공장에서는 골프클럽 제작의 몇 가지 공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헤드와 크라운의 접합 공정이었다. 카본 소재 크라운을 세척하고 건조시킨 뒤 티타늄 헤드에 접착제를 이용해 붙였다. 이후 연마기를 이용해 가장자리를 매끄럽게 갈아냈다. 크라운 부위도 연마를 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최근에는 카본이 사용되지 않는 골프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카본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게와 강도 때문이다. 건조해 놓은 카본 크라운을 직접 들어보니 일반 장난감 플라스틱보다도 더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단단했다. 다른 쪽에는 카본으로 만든 자전거 몸체도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들어보니 무게감이랄 것도 없이 한 손으로 그냥 쑥 올라오는 게 아닌가. 티타늄은 스틸보다 45% 가볍고, 카본은 티타늄에 비해 40% 가볍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안내를 맡은 품질관리부의 다카하시 나가시 사원은 “지난해부터 미국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카본 드라이버를 내놓고 있는데 요넥스는 배드민턴과 테니스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1982년 골프클럽 시장에 뛰어들면서부터 카본 드라이버(카보넥스)를 선보였다”고 했다.
당시의 제품 소개서를 보니 “우리의 카본 헤드는 기존 전통적인 클럽에 비해 5배 강하다. 멀티 레이어 구조로 스위트스폿의 면적을 넓히고 헤드 무게를 주변부로 배치했다”고 돼 있었다. 마치 요즘 광고 문구를 보는 듯했다. 클럽 공장에서 의외로 신기했던 건 그립을 끼우는 작업과 CPM(분당진동수) 측정 등을 기계가 자동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다카하시 사원의 안내로 아주 잠깐 배드민턴과 테니스 라켓을 만드는 라인도 둘러볼 수 있었다. 나가오카에서 나고 자랐다는 다카하시 사원은 “저를 비롯해 여기 있는 모든 직원들은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에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찾은 곳은 인근의 샤프트 제조 공장이었다. 사진 촬영을 할 수는 없었지만 원단의 재단, 성형, 열처리, 탈형, 커팅, 연마, 도색 등의 전 과정을 비교적 순서대로 볼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생산 설비의 자동화가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무게, CPM, 스파인 검사 등을 자동으로 진행했다.
앞선 기술의 근간이 된 모노즈쿠리 정신
일반적으로 클럽 제조회사들은 헤드만 직접 만들고, 샤프트는 전문 업체의 제품을 사용한다. 요넥스는 왜 직접 샤프트까지 만들까. 선전부의 안도 켄이치 차장은 “비용과 효율 등을 감안한다면 외부 업체의 샤프트를 사용하는 게 맞다. 하지만 골프클럽은 헤드와 샤프트의 조합이 중요하다. 각각 성능이 뛰어나더라도 궁합이 맞아야 한다”며 “우리가 개발한 헤드에 최적화된 샤프트를 사용하고 일관된 품질 관리 등을 위해 직접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안도 차장은 또한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라켓에 사용되는 샤프트를 생산하면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다른 분야의 제품도 생산하는 덕에 골프의 고정관념에 구애 받지 않는 기술의 발견도 있다”며 “창업자 때부터 이어 내려오는 기술 혁신 정신이 오늘날 우리 회사를 발전시킨 비결”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회의장에서 잠시 봤던 요넥스의 사훈이 떠올랐다. ‘창조의 기술과 최고의 제품으로 세계에 공헌한다’.
인근에 위치한 골프장인 요넥스 컨트리클럽에는 직접 운영하는 피팅 스튜디오도 있다. 신제품에 대한 각종 테스트를 진행하고 계약 선수들에게 클럽을 제작해주는 곳이다. 안도 차장은 “도쿄 본사에서 제품에 대한 설계를 하고 이곳 공장과 피팅 스튜디오에서 실무적인 작업을 담당한다”고 했다.
스튜디오 로고를 보니 카멜레온이 골프채 나뭇가지 위에 올라간 모습이다. 스튜디오 연구원은 “주위 환경에 맞게 색이 변하는 카멜레온처럼 골퍼 개개인에게 가장 알맞은 제품을 피팅해주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오늘날 ‘소재 왕국’ 일본을 만든 비결 중 하나는 ‘모노즈쿠리(物作り)’ 정신이다.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혼을 불어넣어 완벽함을 추구하겠다는 마인드다. 요넥스에서도 모노즈쿠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