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와 볼보의 나라 스웨덴은 캠핑이 자유롭다. 내외국인 여하를 막론하고 사유지가 아니라면 누구나 주택 70m이상의 거리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다. 이는 나라의 분위기나 문화가 아니라, 법이다. 스웨덴 법에는 ‘알레만스라텐(ALLEMANSRATTEN)’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직역하면 공공의 접근할 권리(Right of Public access)라는 의미, 흔히 ‘방랑할 권리’로 불린다. 방랑할 권리는 누구나 대자연에 접근할 수 있고, 머물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사색할 수 있는 권리다. 비슷한 법은 노르웨이에도 있다. ‘방랑할 권리’는 북유럽 국가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들의 생활 양식이기도 하다.
서울 안국동에 도화서길 빌딩에 차려진 갤러리 ‘몬도베르’에서 이 ‘방랑할 권리’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고즈넉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심해에서 춤추는 생명체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푸른색 그림이 벽면 가득 펼쳐진다. 작품명 ‘블루 문’의 정체는 ‘연잎’인데 그 색 표현이 오묘하다. 연잎의 중심부부터 끝 부분인 그라데이션을 관통하는 색은 ‘블루’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붉은 빛, 샛노란 빛, 보랏 빛이 새어나온다.작가는 “연잎 속 ‘블루’를 만들기 위해 40여 가지의 색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시장 한쪽 벽에는 작가가 실제로 사용한 색이 나열된 색 조견표가 함께 전시돼있었다. 이 중에는 형광에 가까운 분홍색도 있다. 이런 색이 대체 어디에 쓰였는지 의아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그런 색이 있다.
작품을 몽환적으로 만드는 것은 색 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캔버스를 수차례 사포로 또 갈아 대리석 바닥처럼 매끄럽게 만들고, 얇은 붓으로 어린왕자, 스파이더맨, 물방울 등 아이콘을 1cm의 작은 크기로 그려내며 총 4개월 여에 걸쳐 작품을 완성한다. 아이콘도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는다. 여러 장의 같은 사진을 보고 크기와 포즈를 연구해 캔버스 속 연잎과 어우러지게 그려낸다. 아이콘의 위치보다는 아이콘이 전체 그림 속에 존재하는 이유를 느끼는 게 감상의 핵심이다. 세필 붓으로 연잎 위에 잎맥을 그리고 연잎 끝자락을 수차례 반복해 그라데이션을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다. 이런 섬세함 덕분에 작품 속 연잎은 캔버스 위에 고정돼 있지 않고 마치 바다나 우주를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방랑할 권리’인 이유다. 작가는 갤러리 몬도베르의 첫 번째 소속 작가다. 갤러리 측은 개관 이후 50여 명의 작가를 만나며 소속 작가를 물색하다 남 작가의 작품을 보고 즉각 전속 계약을 추진했다. 몬도베르 측은 “캔버스 안에 연잎이 있지만 얽매이지 않고 정처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방랑할 권리’와 닮은 듯했다”며 전시 주제를 설명했다. 몬도베르에서 열리는 전시는 오는 6월 30일까지다. 이후 작가는 7월 영국 런던 초대전, 10월 호주 멜버른 개인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동양적 소재인 연잎과 서양화를 접목한 ‘블루문’을 세계에 선보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