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물난리로 인해 일부 지역의 주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겪은 가운데,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둔 상황에서도 정부의 대책 마련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올 여름 장마철을 앞두고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내놓지 못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 성대전통시장에서 생활용품 마트를 운영하는 서영재(39)씨는 반지하 주택에서 50대 여성 A씨가 목숨을 잃은 지난해 8월 8일 저녁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서씨는 "억 단위의 손해를 봤고 비만 오면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이렇게 장사하고 있습니다. 단골손님은 목숨을 잃으셨어요"라며 작년 여름을 회상했다.
당시 141.5㎜의 폭우에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르면서 서씨의 마트는 아수라장이 됐다. 펌프기 3대를 돌려도 물이 차는 속도가 더 빨라 역부족이었다. 흙탕물과 오물이 덮쳐 330㎡(100평) 가까이 되는 매장에 건질 물건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물난리를 겪고 바로 물막이판을 설치했지만 지하는 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보다 하수구에서 역류하는 문제가 더 크다”며 “작년과 비교해 체감하는 변화는 저 물막이판 하나인데 배수시설 확장 공사는 진행 중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지난해 인명사고가 난 상도동 반지하 주택 주변에 거주하는 김모(86)씨도 불안을 토로했다. 김씨는 "빗물이 방에 들이치는데 다리가 불편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집주인이 데리러 와 겨우 대피할 수 있었다"며 "작년처럼 집주인이 대피시키지 않으면 어떡하나. 비 내리지 말라고 비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연합뉴스가 지난 12일 만난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은 물막이판 등 기존 대책으로는 폭우 피해를 막을 수 없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주민은 물막이판을 가리키며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르는데 물막이판은 50㎝도 채 안 된다. 물막이판을 설치한다 한들 물이 역류하는 건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대전통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오형균(78)씨는 “신대방삼거리역 쪽으로 갈수록 땅이 조금씩 낮아진다. 물이 저지대에서 빠르게 빠지지 못하니 역류하는 것”이라며 “역류방지기 설치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 배수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림천과 가까운 관악구 관악신사시장 주민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30년째 속옷가게를 운영하는 홍혜자(80)씨는 “며칠 전 공무원이 와서 물막이판을 설치하겠냐고 묻더니 오늘에서야 서명한 서류를 받아 갔다”며 “올해는 비가 더 많이 내린다는데 달라진 건 없다”고 토로했다.
홍씨는 “고지대에서 내려오는 물보다 저지대에서 역류해 올라오는 물이 더 무서웠다. 둘이 합쳐져 피해가 컸다”며 “물막이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정부와 서울시는 취약 지역에 물막이판 등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는 단기 대책과 광화문·강남역 대심도 저류시설(빗물터널), 도림천·대방천 지하 방수로를 건설하는 장기 대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장마가 코앞으로 다가온 이달, 사업 진행 상황은 더딘 것으로 드러났다. 이달 5일 기준 침수 피해 우려가 큰 서울의 반지하주택 약 2만호 중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된 곳은 약 30%에 그친다. 대심도 저류시설과 같은 장기 대책 또한 기본계획 수립 단계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작년 11월부터 시작한 대심도 관련 기본계획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기본계획이 완료돼야 설계를 발주할 수 있다. 대심도 완공을 100%로 친다면 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잦은 집중호우가 예상되는 만큼 일각에서는 신속하고 일관된 도시침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막이판, 역류방지기, 이동식 방범창 등 단기 대책과 배수용량 확보 같은 중·장기 대책이 함께 추진돼야 침수 피해를 제대로 막을 수 있다”며 “지자체장과 시장, 나아가 정권이 바뀌더라도 수해방지 정책을 축소하거나 재검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