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10cm 뼛조각이 말해주는 '격전의 그날'

◆ 국군 유해발굴 현장 가보니

'철의 삼각지대' 철원군 생창리

유해 10구·유품 518점 등 발견

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6·25 국군전사자 추정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철원=성형주 기자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6·25 국군전사자 추정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철원=성형주 기자




“지금부터 약식 제례를 거행하겠습니다. 6·25 전사자에 대해 경례.”



6·25를 닷새 앞두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 20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발견된 무명용사의 유해 뒤쪽으로 검은 포탄 자국이 선명했다. 중공군의 포탄에 산화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무명용사의 육신은 70여 년의 세월 속에 형체 없이 사라지고 10㎝ 남짓한 뒷팔 뼈의 일부만 남았다. 이미 떠나간 용사는 아주 작은 흔적만 남겼지만 발굴 현장에 있던 120여 명의 장병들은 온전한 유해를 마주한 듯 엄숙히 선배 전우에 대한 예를 갖췄다.

피아 섞인 유품 무더기 발견…"미수습 전사자 아직도 13만"


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발굴된 물품들. 철원=성형주 기자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발굴된 물품들. 철원=성형주 기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으로 10점의 유해와 녹슨 포탄 파편, 총탄, 숟가락, 대검, 약병, 담뱃값 등 다수의 유품이 발견된 철원군 생창리는 철원·평강·김화가 포함된 요충지인 ‘철의 삼각지대’를 사수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던 격전지였다. 국군과 미군은 물론 중공군의 유품까지 발견될 만큼 당시 전장은 그야말로 피아가 혼재된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유해 발굴 현장에서 기초 발굴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도상근 육군 제3사단 진백골대대 중령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품은 총 518점”이라며 “아군과 적군의 유품이 혼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지역이 격전지였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해 뒤로 검은 포탄자국 선명…당시 치열한 전쟁 현장 드러내


1951년 전쟁 당시 생창리는 철의 삼각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임진강~철원~김화~화천저수지를 잇는 가상의 선인 ‘와이오밍선(중공군에 맞선 사창리 북쪽의 작전통제선)’ 진격의 주요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다. 미군 제25사단에 배속돼 생창리를 확보한 터키여단으로부터 지역을 인계받은 국군 제9사단은 이곳을 발판으로 동북쪽에 위치한 계웅산을 확보하기 위해 중공군과 밤낮없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 달간 이어진 전투 끝에 국군 제9사단은 6월 28일 계웅산 603고지를 점령했다.

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유해 발굴 현장에서 포탄 파편 등 철제 유품이 발견됐다. 철원=이승령 기자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유해 발굴 현장에서 포탄 파편 등 철제 유품이 발견됐다. 철원=이승령 기자


유해 발굴 현장 역시 중공군이 쏜 포탄의 흔적이 발견된 전장의 한가운데였다. 유해는 6·25전쟁 당시의 지층인 ‘생토층’보다 위의 지층에서 발견됐다. 진백골대대 장병들이 줄지어 지면에서 약 50㎝가량을 파내려가며 생토층을 찾는 기초 발굴을 벌이다 발견됐다. 유해 발견 현장에 있었던 이의준 상병은 “처음에는 이게 돌인지 나무 뿌리인지 정확히 식별할 수 없어 바로 감식단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원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상사)은 “전사자의 유해가 계곡 상부에서부터 동물이나 자연적 요인으로 쓸려 내려와 6·25 당시의 지층보다 위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무더위 속 세심히 추가굴토 작업, "선배 전우들 희생에 보답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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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발굴로 식별된 유해는 곧바로 발굴되지 않고 감식단 인원들의 추가 굴토를 의미하는 ‘확장·노출’ 작업으로 이어진다. 굴토 지역을 유해나 유품 주변 지역으로 넓히고 유해나 유품을 토양 밖으로 노출한다는 의미다. 발견 장소 주변으로 또 다른 유해나 유품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문 감식 요원이 매우 세심하게 진행하는 작업이다.

이날 공개된 유해 한 점은 대나무칼·스파출라 등 전문 발굴 장비를 이용해 감식단원들이 조심스럽게 수습했다. 수습된 유해는 신체의 뼈 구조가 그려진 ‘유해노출깔개’ 위로 옮겨져 신체 어느 부분의 뼈인지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후 한지에 싸는 ‘약첩’으로 이어졌다. 이어 오동나무 관에 유해를 옮기고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관포’가 진행됐다. 이날 유해와 함께 총탄·탄클립 등 다수의 유품도 발견됐다.

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3사단 장병들이 6·25 국군전사자 추정 유해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철원=성형주 기자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3사단 장병들이 6·25 국군전사자 추정 유해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철원=성형주 기자


관포 작업이 마무리되고 유해가 현장을 떠나기 전 약식 제례를 위해 이동하자 반대편 경사면에서 들려오던 삽질 소리가 한순간 멈췄다. 이어 장병들은 북어포와 술이 차려진 간단한 제단 앞에서 발굴팀장의 주도로 약식 제례를 진행했다. 제례 후 유해가 하산하는 길 양쪽으로 장병들이 도열해 일제히 경례하며 이날의 발굴 작업은 마무리됐다.

진백골대대의 우서빈 상병은 “무더위 속에 힘들지만 선배 전우들의 희생을 느끼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며 “선배 전우들의 숭고함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만3121구 발굴, 13만명 미수습
"신원확인 1% 가능성도 포기 못해"
유가족들 유전자 검사 도움 절실


국방부에 따르면 2000년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까지 총 1만 3121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이 가운데 211명의 신원이 확인돼 뒤늦게나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나머지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유해발굴단 신원확인센터에 안치돼 있다. 발굴 이후 유해에서 DNA 채취 등 감식 작업을 벌이는 이덕원 주무관은 “혈액이나 타액은 소량만 있어도 DNA를 추출할 수 있지만 뼈는 그렇지 않다”며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새로운 기술이 나오거나 대조할 수 있는 가족들이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1%의 가능성도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철원=성형주 기자20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200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철원=성형주 기자


생창리에서 진행되는 진백골대대와 감식단의 작업은 30일까지 이어진다. 연이은 폭염으로 고되지만 현장의 장병들은 오히려 “한 분이라도 더 국가가 나서 찾아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6·25전쟁이 끝났어도 여전히 전투 현장 곳곳에 잠들어 있는 미수습 전사자는 13만여 명이다. 지역 주민과 참전용사의 증언, 그리고 전사자 가족들의 유전자 검사가 절실한 이유다.

이날 감식 현장을 지휘한 도 중령은 “많은 유품이 발견된 만큼 생창리 지역에 대한 추가 발굴도 이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선배 전우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드리기 위해 발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철원=이승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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