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한결 좋아지셨어요. 이제 집에 가셔도 될 것 같은데요?”
“예, 똑바로 누워서 잔 게 몇 년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니 이제야 좀 살겠더라고요. 꿈만 같습니다.”
지난 5월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병동. 일주일 전 박덕우·강도윤 교수로부터 경피적 승모판막 재치환술을 받은 정순녀(81·가명)씨가 환한 미소로 오전 회진을 도는 의료진을 반겼다. 정씨는 10년 전 ‘승모판 기능부전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승모판(mitral valve)은 심장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위치하는 판막이다. 심장이 수축하면서 전신으로 혈액을 내보낼 때 혈액이 좌심방으로 역류하지 않도록 막는다. 승모판 기능부전은 승모판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닫힐 수 없는 상태다. 판막 폐쇄부전증이 서서히 진행되다 보니 대부분 초기에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지만 방치하면 쉽게 지치고 숨쉬기 힘들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심한 운동이나 움직임을 할 때만 숨이 차다가 점차 안정을 취할 때도 호흡이 가빠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 재수술 어려운데 갈아끼운 판막도 망가져…호흡곤란 극심
정씨는 이미 일흔살 무렵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병든 판막을 제거하고 인공판막으로 바꾸는 판막치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을 받고 10년 가까이 되자 갈아끼운 판막에도 문제가 생겼다.
승모판 기능부전이 심해지면 좌심방이 확장될 여유가 없어져 좌심방 압력이 급격히 올라간다. 덩달아 폐동맥압도 상승해 폐부종이 생기고 심한 호흡곤란과 기침, 가래 증상이 나타난다. 숨이 가빠 똑바로 눕지도 못한 채 밤잠을 설치던 정씨는 아들 내외의 손에 이끌려 10년 여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가슴을 여는 개흉수술은 고령 환자에게 체력적 부담이 클 뿐 아니라 합병증 위험이 높다. 정씨는 10년 전 수술을 받았을 당시에도 제법 오랜 기간 입원해야 할 만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막막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고민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심부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수술이 시급하지만 고령에 각종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터라 심장수술을 강행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큰 탓이었다.
◇ 서울아산병원, 2016년 시술 첫 성공…7년만에 신의료기술 허가
“도와드릴 방법을 찾았어요!”
강 교수가 낙담하던 정씨와 가족들에게 희소식을 전한 건 매주 금요일 아침에 열리는 다학제 협의진료 직후였다. 강 교수는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영상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 전문가들이 모여 상의한 결과 경피적 승모판막 재치환술을 시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가슴을 열지 않기 때문에 수술이 어려운 고령 환자도 한결 부담이 적어 시도할 만 하다”고 설득했다.
경피적 승모판막 재치환술은 외과적 수술을 통해 삽입된 생체 인공 승모판막에 협착이나 기능부전이 생긴 환자의 흉부를 절개하지 않고 허벅지 쪽 대퇴정맥을 통해 새로운 인공 승모판막을 삽입하는 기술이다. 대퇴정맥으로 카테터를 넣고 풍선판막성형술로 기존 승모판막을 확장시킨 다음 형광투시 및 심초음파 검사를 이용해 새로운 인공 승모판막을 삽입한다. 오래된 판막 안에 새 판막을 넣는다고 이해하면 쉽다.
심장수술 30일 이내 사망률을 점수화한 STS(Society of Thoracic Surgeons) 위험점수와 동반질환을 고려해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고위험군으로 판단된 환자에서 가슴을 여는 승모판막 재치환술과 합병증이 유사하거나 낮고 심기능 개선 효과가 뛰어나다. 심장수술이 불가능했던 환자들에게 유일한 대안인 만큼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는데 국내에서는 규제기관의 요구 조건이 까다로워 상대적으로 승인 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울아산병원은 2016년 연구과제로 승모판막 역류증이 재발한 80대 환자에게 경피적 승모판막 재치환술을 국내 최초로 시행한 바 있다. 올 4월 말 보건복지부가 심장수술 30일 이내 사망률을 점수화한 STS 위험점수와 동반질환을 고려해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고위험군으로 판단된 환자 대상의 신의료기술로 인정되기까지 꼬박 7년을 기다린 셈이다. 강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 케이스들로 시술의 안전성이 인정되며 신의료기술로 승인될 수 있었다”며 “자칫 치료시기를 놓칠 뻔 했던 환자에게 첫 공식 케이스로 시술을 시행하고 경과도 좋아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 고령화로 ‘재수술’ 수요 급증…"신의료기술 허가·급여도 속도 내야"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정씨 같이 수술이 어려운 고령 고위험 환자들은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아산병원은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TAVI)·승모판막 클립 등 최소절개 시술을 통해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대동맥 판막이 석회화되면서 좁아져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대동막판막 협착증 환자에게 가슴을 절개하는 개흉수술 대신 최소절개로 인공판막을 집어넣어 대동맥 판막을 교체하는 시술이다. 세계적인 심장스텐트시술 대가로 꼽히는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석좌교수가 2010년 국내 최초로 시행한 이후 대동맥 판막 협착증의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중증 대동맥판막 환자에게 시행한 303건의 TAVI 시술 건수를 시행했다. 2010년 이후 누적 시행건수는 1631건에 달한다. 국내 단일 기관 중 단연코 압도적인 기록이다.
강 교수는 “의료현장에서는 혁신 기술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제를 적용하는 탓에 허가나 보험 승인이 늦어지는 사례가 많다”며 “TAVI 시술의 경우 국내 도입 이후 보험적용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경피적 승모판막 재치환술이 이제라도 허가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 사이 치료기회를 놓친 환자들도 적지 않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이어 “최신 시술은 대부분 고가라 고령 환자들에게 큰 허들”이라며 “하루 빨리 급여화되어 더 많은 환자들이 최신 기술의 혜택을 받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