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CNN은 기술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 책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물론 이전에도 기술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을 두고 경쟁하는 집단은 기업·국가·진영 순으로 확대되고 있다. 더 이상 기술 개발은 기업 단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기술전쟁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2018년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보복관세 부과 정책을 매겼고 중국은 재빠르게 반발에 나섰다. 이들의 패권 대결이 함의하듯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기술의 장벽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는 기술전쟁의 전장을 6개로 분류한다.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고지는 세 가지다. 설계·소재·제조 등 실질적 기술을 뜻하는 피지컬 배틀필드, 데이터를 이용한 기술을 일컫는 디지털 배틀필드, 우주를 둘러싼 기술을 이르는 스페이스 배틀필드가 그것이다. 이 분야의 승자는 앞으로 미래를 지배할 기술을 재정의할 수 있다. 패자는 승자를 따를 수밖에 없다. 반면 세계적인 차원의 특허·표준·인재 경쟁은 홀로 승리를 거두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뒤처지지 않도록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이 첨단화될수록 첨단 기술을 지닌 제품을 만드는 일은 까다로운 일이 된다. 수만 개의 부품이 필요한 만큼 수만 개의 기술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에도 25만 개 이상의 특허가 필요하기 때문에 1주에 1번 꼴로 특허 소송이 걸릴 정도로 복잡한 문제가 됐다.
이외에도 반도체와 코로나 백신, 인공 위성 등 다양한 분야의 예시를 든다. 음식을 두고 벌어진 ‘파오차이 표준’ 논쟁은 흥미롭다. 국제표준화기구는 2020년 ‘파오차이 표준’을 제정했지만, 파오차이 표준은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01년부터 이미 ‘김치’에 대한 표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표준을 선점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는 생생한 예시다.
저자는 기술전쟁의 시대에서 한국이 나가야 할 ‘SIT 3A’ 원칙을 제시하며 책을 매듭짓는다. 과학 기술의 힘을 믿고 혁신을 계속하면서 재능 있는 인재를 확보하라는 뜻이다. 또 5대 제조강국 중 미·중을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 독일이 협력해 ‘네트워크형 기술 강소국 세력’을 만들 것을 주창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를 예측하고 적응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1만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