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대 여학생에게 극단적 선택 방법을 알려준 혐의를 받고 있는 20대 남성이 검찰에 송치 직후 온라인에 ‘공개 반성문’을 게재했다. 본인이 ‘그동안 자살 충동을 느껴왔고, (자살방법 등) 위법 정보도 충동적으로 공유하게 됐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해당 글에 ‘피해자 가족 등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해자 가족에게 직접 사과가 아닌 온라인상에 의견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자신에 대한 비난 가능성을 낮추고, 죄책감을 희석시키기 위한 행위일뿐”이라고 분석했다.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고, 방조하는 이른바 ‘자살 문화’가 이미 젊은 층 사이에 형성돼 있는 만큼 해당 행위 자체가 범죄라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 방배경찰서는 최근 A씨를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 위반 혐의에 따른 기소 의견으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송치했다.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B갤러리에서 C양에게 극단적 선택을 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 혐의를 받는다. C양은 최근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검안서상 사인은 D가스 흡입에 따른 산소결핍질식사다. C양 유족들은 앞서 지난달 4일 ‘△△’ 아이디를 쓰는 신원미상 인물을 자살 방조 혐의로 서울 방배경찰서에 고소했다. 자살예방법 제25조(벌칙)에서는 ‘자살유발 정보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 수사 결과 △△ 아이디를 쓰는 인물로 특정된 A씨는 검찰에 송치된 직후 B갤러리에 “검사님과 피해자의 가족, 주변인들께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글을 게재했다. A씨는 우선 해당 글에서 “고등학교 입학한 이래로 늘 외톨이였다”며 본인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작년 중순부터 삶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했고, 죽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며 “자포자기한 채로 대부분의 시간을 죽는 방법을 알아보고, 그것에 대한 게시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작성하며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와 댓글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에서 찾았던 위법한 정보들을 충동적으로 공유했다”며 “위법 여부와 상관없이 여러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A씨가 해당 글에서 피해자 가족 등에 대한 ‘사과’를 언급하고 있으나 진정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피해자 유족에게 전달되는 직접 행동이 아닌 온라인상 공개한 사과글이 ‘본인 행위를 합리화한다’거나 ‘죄책감을 덜고 싶다'는 행위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전 한국범죄심리학회장)는 “과거의 일들이나 자신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열하는 건 피의자·피고인이 주로 쓰는 행위”라며 “변명·핑계를 통한 일종의 (범행) 합리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을 기다리거나 수사 중인 이들이 쓰는 반성문에는 감형을 받는다거나 선처를 바라는 등 지능적이고 교활한 내면이 숨겨져 있다”며 “해당 글 역시 진정한 사과나 반성보다는 선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측면이 큰 듯 하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인터넷에 사과 글을 올리는 것은 (본인에게) 친밀한 공간에서 자신에 대한 비난 가능성과 죄책감을 희석하기 위한 행위로 해석된다”며 “진정한 사과는 피해자(유족)에게 직접 하는 것이 맞지만, (A씨가) 그보다 생활 공간이 돼버린 인터넷 공간이 더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19에 따른 이른바 ‘비대면 사회’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반성문은 물론 심지어 생을 마감하는 장면까지 공유하는 흐름이 젊은 층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남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걸 부추기거나, 방조하는 행위까지도 실제 죄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른바 ‘자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막기 위한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A씨가) 범죄로 인식했다면 (본인 행위에 대한) 사정을 인터넷 공간에 털어놓겠느냐”며 “사이버 공간에서 우울증이라는 이유로 자살에 대한 생각을 공유·토론하는 자살문화가 형성되면서 자살 방조나 교사 같은 행위를 범죄로 여기지 않는 듯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극단적 선택으로 언급할 뿐 암묵적으로 자살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고 금기시하고 쉬쉬하면서, 실제 이들 사이 대화·정보 제공 등은 표현의 자유라고 해 해당 사이트조차 폐쇄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 금기시했던 성폭력도 친고죄 폐지로 신고가 늘어 피해 사례를 줄였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예방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연이은 자살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