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보유한 국가와 국민이 문자박물관쯤은 하나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고 지난 2013년 훈민정음학회가 건립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꼭 10년 만인 29일 인천에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당초 기존 ‘국립한글박물관(서울 용산 소재)’과 중복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한글을 빛내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문자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이와 관련, 문체부 측은 “한글박물관은 한글의 가치에, 이 박물관은 세계 문자 연구와 전시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한다. 글로벌 수준의 문자박물관은 프랑스 샹폴리옹 박물관과 중국 문자박물관에 이어 세계 3번째다.
문체부는 이날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개관식을 가졌다. 박물관은 총면적 1만5650㎡ 규모로 지하 1층은 상설전시실, 지상 1층은 기획전시실과 어린이체험실·편의시설, 지상 2층은 카페테리아로 꾸며졌다.
박물관은 흰색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한 외관을 갖춰 ‘페이지스’(Pages)란 이름을 붙였다. 국비 620억원이 투입됐으며 추가로 소장품 확보비용 100억 원을 포함해 총 72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지난 2013년 훈민정음학회가 건립을 건의한 이후 문체부가 2014년 기본구상 연구를 완료했고 2019년 착공해 4년 만에 완공을 봤다.
문체부는 송도 국제업무지구가 세계 문자 콘셉트와 잘 맞아 건립지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기존 인천에 국립박물관이 없었던 것을 감안한 지역 안배가 적용됐고 또 인천국제공항이 가까운 관광 측면도 도움이 됐다.
박물관은 지난 4년동안 소장품으로 희귀 유물을 비롯한 전 세계 문자 자료 244건 543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중 ‘원형 배 점토판’은 기원전 2000년~1600년 점토판 앞뒷면에 쐐기 문자로 고대 서아시아의 홍수 신화를 기록한 문서이다. 그 내용이 기독교 성서의 ‘노아의 방주’와 유사해 성서고고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록물로 여겨진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새겨진 ‘카노푸스 단지’(기원전 664~525년), 유럽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가장 오래된 서적인 ‘구텐베르크 42행 성서’(1454년경) 등이 눈길을 끈다. 또 마틴 루터가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비텐베르크 구약성서 초판본(1523~1524년), 야자수 잎에 인도 싯다마트리카 계열 문자가 쓰여진 ‘팔천송반야경 패엽경’(1150~1200년) 등도 있다.
복제 전시품으로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한 ‘함무라비 법전’, 독일 라이프치히대학도서관이 소장한 현전 가장 오래된 의학 기록인 ‘파피루스 에버스’, 영국박물관이 소장한 인류 최초의 알파벳이 기록된 ‘세라비트 엘카딤 스핑크스’ 등이 있다.
김주원 국립세계문자박물관장은 “박물관은 세계의 문자와 문화, 인류 역사를 만나는 전시와 연구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