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코넥스에 상장된 B사에 부도가 발생했다. 발행한 전자어음 2억 원을 막지 못해 당좌거래가 정지됐고 이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지난해에도 400억 원 가까운 매출을 일으켰지만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금리가 상승하고 비용이 늘어난 데다 경기 침체로 매출채권 회수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부도에 이르게 됐다.
지난해부터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당좌거래정지 건수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직은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에 기대어 버티고는 있지만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 한계 상황에 부딪힐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당좌거래가 정지된 법인과 개인은 총 94곳으로 지난해 하반기(78곳)보다 20%가량 증가했다. 당좌거래정지 건수는 코로나 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상반기 238건에 달했지만 이후 차츰 줄어 지난해 상반기에는 72건까지 감소했다. 정부가 코로나로 인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채무 상환 유예 등의 조치를 취한 데다 당좌를 개설하려는 기업이나 개인의 수요도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코로나19 엔데믹과 함께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기업들이 자금 압박을 겪으면서 지난해 말부터 어음 상환에 실패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업종별로는 식품 유통과 건설 관련 업종의 당좌거래정지가 가장 많았다. 상반기 당좌거래가 정지된 기업 73곳(나머지 21곳은 개인) 중 18곳이 식품 유통 기업이었다. 식품 유통 기업은 대체로 영세한 업체가 많아 가장 먼저 금리 급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건설 관련 기업도 18곳이었다. 시공이나 설비 등 순수하게 건설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10곳이었으며 건자재 도매상 등 건설 후방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도 8곳이나 됐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고 신규 사업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경영난이 가중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외에 금속 부품 등을 만드는 제조업체가 10곳이었으며 플라스틱 부품 등을 만드는 화학제품 제조 기업도 6곳에 달했고, 자동차 산업은 호조를 보이는 상황이지만 차 부품 제조 업체 5곳도 올 상반기 당좌거래가 정지됐다.
문제는 앞으로 고금리 상황이 계속되면 이런 한계기업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중소기업의 은행 연체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46%로 전월(0.41%) 대비 0.05%포인트 상승했다. 경기도 시화공단의 한 은행 지점장은 “아직 거래하는 기업 중 부도가 난 경우는 없지만 연체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금리는 높게 유지되면서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대출 연체율이 증가하고 일부는 당좌거래정지까지 맞고 있는 것”이라며 “지속되는 고물가 현상으로 인해 당분간 금리를 낮추기는 어려워 규모가 작은 기업을 중심으로 부도가 확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현장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생각 이상이다. 경기 침체와 금리 급등, 여기에 전기료 등 생활 물가까지 급등하자 고사 직전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용접기 제조 기업을 운영하는 은종목 대표는 “용접기 원료가 되는 금속 가격이 오르고 인건비도 상승하는데 납품 단가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전반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여기에 대출금리마저 오르면서 산단 내에서는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거나 공장을 팔고 사업을 접으려 하는 업체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대표 C 씨는 “최근 경기 악화에 더해 중소기업 취업 기피에 따른 기술 인력 부족 등 장기간 지속돼온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다수”라고 설명했다.
소상공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 관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유덕현 씨는 “올해 들어 사업장 매출이 30%가량 줄고 전기·가스료를 비롯해 식자재 가격 등 비용은 올랐다”며 “코로나19 당시 신용보증기금과 소상공인진흥공단을 통해 받은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데 금리까지 올라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과 소상공업계에서는 정부와 금융 당국, 금융권이 관리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소비 진작 등의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D 씨는 “금리를 깎아주거나 대출을 유예하는 조치가 도움이 되지만 경기가 계속 나빠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꽁꽁 닫은 지갑을 열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