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이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유럽 생산공정을 둘러보며 차량용 반도체 기술 내재화를 위한 구상에 나섰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달리는 컴퓨터’로 진화하는 가운데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차와 목적기반차량(PBV) 등에 적용할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정 회장이 직접 나서 챙기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7일(현지 시간) 아일랜드 킬데어주 레익슬립에 위치한 인텔의 아일랜드 캠퍼스를 찾아 앤마리 홈스 인텔 반도체 제조그룹 공동 총괄 부사장의 안내로 ‘팹(공장)24’의 14나노 핀펫(FinFET) 공정을 둘러봤다.
정 회장의 이번 방문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파악하고 앞으로 중요성이 커질 차량용 반도체 개발 및 기술 내재화 구상을 위해 추진됐다.
1989년 가동에 들어간 인텔의 아일랜드 캠퍼스는 유럽 내 핵심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핀펫은 정보처리 속도와 소비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 소자를 3차원 입체 구조로 만든 시스템반도체 기술이다. 팹24에서는 이 기술을 활용, 현대차의 표준형 5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제네시스 G90, 기아(000270) EV9의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에 탑재되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팹24를 둘러본 정 회장은 인텔의 팹 운영 현황을 365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원격운영센터(ROC)’에서 인텔의 반도체 생산 및 공급망 관리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ROC는 기업 인텔의 현황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흐름을 직간접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 시설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에 각종 첨단 기능이 추가되면서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는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자율주행차·PBV 등 미래 모빌리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메인 부품으로 쓰여서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체제 전환을 위해서는 대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연산해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이 필수적이다.
현대차그룹이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 개발과 기술 역량 내재화를 적극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 회장은 올 초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을 겸한 신년회에서 “현재 자동차에 200~300개가량의 반도체 칩이 들어 있다면 레벨4 자율주행 단계에서는 2000개의 반도체 칩이 들어갈 것”이라며 차량용 반도체와 그룹 내 관련 기술 내재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차량용 반도체 부문의 연구개발(R&D)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트론 반도체 사업 부문을 합쳤다. 이어 시스템 및 전력 반도체의 핵심 기술을 조기에 내재화하고 차세대 고성능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간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반도체 업체와의 협력은 물론 유망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 스타트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올 6월에는 차량용 반도체 스타트업인 보스반도체에 20억 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