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르포] 빈 병원에 발길 돌린 환자들…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첫 날

[서울 내 대학병원 파업 첫 날]

수술 하루 만에 퇴원하고 진료 못 받기도

파업에 발길 돌린 환자들 "집에 갑니다"

병원 "환자 피해 최소화 위해 노력 중"

"자발적으로 진료 취소·연기할 필요 없어"

13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건물 밖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소속 노조원들이 파업 집회를 준비 중이다. 김남명 기자13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건물 밖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소속 노조원들이 파업 집회를 준비 중이다. 김남명 기자




“우리가 투쟁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이렇게 일해야 합니다.”



“환자 보호자 쉼터 하나 없는 의료원, 노동조합이 투쟁으로 바꿔가겠습니다.”

1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건물 앞에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소속 노조원 650여명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은 흰 옷에 ‘우리 미래는 우리 손으로’ 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녹색 모자에 붉은 띠를 둘러맨 채 ‘투쟁’을 외쳤다.

이날부터 이틀간 총파업에 참여하는 한 직원은 연단에 올라 “우리 노동자들의 이 목소리는 의료원을 방문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한 투쟁”이라며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유지,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등을 요구했다. 연단에 오른 직원들의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파업에 동참한 노조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13일 오전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지부 소속 직원들이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건물 앞에서 파업 출정식에 나섰다. 정유민 기자13일 오전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지부 소속 직원들이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건물 앞에서 파업 출정식에 나섰다. 정유민 기자


총파업 시작한 보건의료노조


같은 날,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상황도 비슷했다. 이날 병원 건물 앞에는 병원 간호 및 사무 인력 등 노조원 550여명이 모여 파업 출정식에 나섰다. 노조원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오전 10시께부터 파란 우비에 녹색 모자를 쓰고 행사에 참여했다. 이들은 같은 날 오후 1시 반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총파업 투쟁도 진행할 예정이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날 광화문에 집결하는 인원은 약 2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 요구 사안은 △비싼 간병비 해결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환자안전을 위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와 적정인력 기준 마련 △무면허 불법의료를 근절하기 위한 의사인력 확충 △필수의료서비스를 책임지는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를 위한 회복기 지원 △코로나 영웅에게 정당한 보상 △9.2 노정합의 이행 등 요구 △정당한 보상(임금인상률 10.73%) 등이다.

13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부 내시경실에 불이 꺼져있다. 소화기센터 앞 대기 장소에는 환자가 한 명도 없어 썰렁한 모습이었다. 김남명 기자13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부 내시경실에 불이 꺼져있다. 소화기센터 앞 대기 장소에는 환자가 한 명도 없어 썰렁한 모습이었다. 김남명 기자


“예약하고 오셨어요? 오늘 예약 안하셨으면 파업 때문에 진료 어려워요”



두 의료원 건물 밖이 직원들로 붐볐던 점과 달리, 병원 내부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국립중앙의료원 1층 접수·수납 창구 중 일부는 운영조차 되지 않았다. 환자들은 파업 사실을 모른 채 먼 걸음을 했다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예약 없이 방문해 진료 불가 안내를 받고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관련기사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50대 하 모 씨는 “어머니가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봤는데 호전되지 않아서 큰 병원을 가보라는 소견서를 들고 왔다”며 “예약 없이는 오늘 진료를 볼 수 없다고 하는데 비도 오는데 휠체어를 끌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며 푸념했다. 갑상선 수술 이후 20년째 국립중앙의료원을 찾고 있다는 또 다른 환자도 파업 현장을 보고 “지난 주에 올 걸 그랬다”며 당혹스러워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앞 걸려 있는 파업 안내 현수막. 정유민 기자13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앞 걸려 있는 파업 안내 현수막. 정유민 기자


같은 시각,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화기센터 인근에는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내시경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안내 데스크에 앉은 직원도 한 명 뿐이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일하는 직원이 없어서 오늘 오전에는 (소화기센터 관련) 진료나 검사를 아예 안 한다”면서 “내시경 검사나 진료를 예약했던 환자들에게는 미리 안내해 예약 날짜를 싹 다 미룬 상태”라고 말했다.

파업 영향으로 입원 환자들의 퇴원일도 빨라졌다. 지난 12일 요로결석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 정 모(59) 씨는 “어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원래 내일까지 입원했어야 하지만 오늘 퇴원하게 됐다”면서 “아무래도 파업 때문에 퇴원 날짜가 당겨지기는 했지만 수술 및 퇴원 과정에서 불편한 점이 따로 없었고, 몸도 괜찮은 상태라 집에 간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은 파업으로 인해 일부 접수 창구만 운영 중에 있다. 정유민 기자13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은 파업으로 인해 일부 접수 창구만 운영 중에 있다. 정유민 기자


일부 환자들 사이에서는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파업은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환자 이영배(71) 씨는 “원래 오늘 백내장 수술이 예정돼 있었는데 병원 사정으로 수술을 연기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대화나 협상 없이 무조건 파업에 돌입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얼굴을 붉혔다. 이어 이 씨는 “병원은 환자에게 쾌유의 희망을 전해줘야 하는데 병원 내에 걸려있는 거친 구호가 보기 불편하다”도 말했다. 피부과 진료를 보러 온 김영주(84) 씨도 “(나는) 피부과 환자라 중증 아니지만 암 환자들은 걱정된다”며 “의료 영역에서는 파업 하지 말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반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보건의료노조 파업의 취지에 동감한다는 환자도 있었다. 이날 병원을 찾은 한 40대 환자는 “요구 사항이 써진 플랜카드를 보니 오죽하면 파업을 했겠냐는 생각이 든다”면서 “코로나19 때도 의료 인력이 고생이 많았는데 처우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의견을 전했다.


김남명 기자·정유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