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역사속 하루] 비전의 덫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1879년 5월 23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운하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를 꼽을 것이다. 수에즈운하를 계획하고 완공시킨 인물은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기술자인 페르디낭 마리 드 레셉스(1805~1894)이다. 1869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운하를 완성시킨 후 레셉스의 영향력은 유럽에서 막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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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에 가득 찬 레셉스는 1879년 5월 23일 파리에서 열린 ‘대양 간 운하 연구를 위한 국제회의’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아메리카의 횡단 운하를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파나마에 대륙 횡단 운하를 뚫자는 레셉스의 비전은 말라리아 등 질병의 확산과 함께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 왜 10년 전 수에즈에서 대성공을 거뒀던 레셉스의 비전은 10년 후에 대실패했을까.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권력과 진보’라는 책에서 그 이유를 ‘비전의 덫’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비전의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전혀 새로운 상황에서도 지난 성공 방정식과 하나의 사고방식만 고수하면서 다른 가능한 선택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전의 덫’에 사로잡히게 되면 질병에 대한 팩트에 근거한 보고도 적들이 퍼뜨리는 가짜 정보라고 일축하게 된다. 결국 프랑스가 실패한 파나마운하 공사는 30여 년이 지난 1914년 미국의 주도로 개착됐고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왕래하는 물류의 패권을 장악하며 세계적인 대국으로 급성장했다.

운하와 관련한 ‘비전의 덫’은 19세기 중국의 청나라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했다. 앞서 4세기가량 성공적이었던 대운하 테크놀로지를 낙관하던 베이징 운하파의 비전이 너무나 강고하고 확신에 찬 나머지 해양으로의 개방 및 철도·기선(汽船)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무시하거나 심리적인 저항감으로 대처했다. 그 결과는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에서의 패배와 분열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비전의 덫’에서 과연 자유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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