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국내 탄소 배출권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될 수 있게 됐지만 최근 유럽 등에 투자하는 탄소배출권 관련 ETF들의 수익률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전세계적인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인 만큼 해외 뿐 아니라 국내 배출권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 KG제로인에 따르면 직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기준 ‘HANARO 글로벌 탄소배출권 선물 ICE(합성) ETF’는 최근 석 달 동안 6.42%의 손실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 ETF’와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S&P(H) ETF’도 각각 5.72%, 5.55% 하락했다.
탄소 배출권은 기업이 일정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정부는 매년 기업별 탄소 배출 허용량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권리를 지급하는데, 기업들은 이 제도를 통해 남거나 부족한 양을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다. 국내에 상장된 탄소배출권 ETF는 총 5종으로 이 중 4개 상품이 유럽 등 해외 시장의 탄소배출권 시세를 반영하는 ETF다. 나머지 1개는 수익률이 시세와 반대로 움직이는 인버스 상품이다.
글로벌 탄소배출권 관련 ETF의 수익률이 주저앉은 건 천연가스 가격이 급락한 영향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하면 탄소배출이 많은 석탄 사용량이 감소해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연쇄 효과가 벌어진다. 올 들어 유럽에서는 기온이 급상승하는 등 이상 기온 현상에 가스 비축량이 증가해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10월물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 말 MMBTU(가스 열량 단위)당 7달러를 웃돌았지만 올 들어 2달러대로 급락했다. 이에 유럽 시장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 가격도 최근 6개월 새 11.4% 하락했다.
비록 천연가스 가격 하락으로 탄소배출권 시장이 주춤하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기후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만큼 글로벌 탄소배출권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유럽연합(EU)은 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43% 줄인다는 기존 계획을 62%로 조정하는 등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는 점점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이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을 추종하는 ETF 등 금융상품을 상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등 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점도 시장의 전망을 밝게 한다. 환경부는 지난 20일 배출권 거래시장의 참여자를 늘리고 거래 상품을 다양화하고자 ETF 등의 상품 출시를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위험 관리를 위한 선물시장도 2025년까지 개설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정연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배출권 거래 시장 기능을 저해했던 요소들이 개선되고 선물 시장이 신설되면 가격 변동성은 높고 거래량은 적은 국내 배출권 거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배출권 거래 시장의 원활한 운영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들이 자리 잡으면 시장이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