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의 김홍신(76) 작가가 6년 만에 장편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를 들고 독자들에게 돌아 왔다.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연 김 작가는 “이번 소설은 1971년 육군 소위로 철책선 부대 소대장을 하면서 구상을 했지만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서 50여년 만인 이제야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지난 1971년 사살된 북한 장교의 시신 앞에 나무 십자가를 꽂아주고 명복을 빌어준 죄로 ‘적인종‘으로 매도된 학도군사훈련단 출신 대한민국 국군 소위 한서진의 일대기를 그린다. 적군의 죽음에도 애도를 표하던 서진이 독재정권 시절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국가에 따른 고문과 감옥살이를 거치며 증오와 원망 속에서 복수를 꾀하다가 이후 용서라는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 작가는 “북한군이 사살되고 시신 앞에 십자가를 꽂아준 뒤 보안대에 조사를 받은 내용까지는 제가 경험한 ‘팩트’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허구”라고 말했다.
책에서 ‘애도’라는 제목과 소재에 대해 김 작가는 “한국인은 애도를 잘하는 민족이다. 사회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으면 법원이나 검찰청 앞에 꽃이 많이 놓이잖아요. 저는 그것도 어찌 보면 애도의 한 상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에서 주인공이 복수 대신 용서를 선택하게 한 이유에 대해서 그는 “용서를 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를 죽이게 된다. 자기 마음을 가볍게 정돈해서 나를 살리는 게 용서”라며 “결국 애도다운 애도는 용서와 진심”이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이 소설을 위해 애초 생각한 소설 제목이 주인공이 공격받는 대로 ‘적인종’이었다고 소개했다.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도 아닌 적인종은 빨갱이를 말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빨갱이로 몰려 고초를 겪는다.
김홍신은 “빨갱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뭔가 하다가 적인종이란 말을 생각했다”며 “우리 젊을 때는 빨갱이라는 말이 사회에서 극도로 차별받은 가장 잔혹한 형벌 중 하나였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평가받은 소설 ‘인간시장’을 포함해 그가 현재까지 쓴 책은 소설·시·산문·꽁트집 등 모두 138권이나 된다. 지난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3년 뒤면 50주년을 맞는다”며 “지금까지 138권의 책을 썼는 데, 더 열심히 소설을 써서 140권을 넘겨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가 모자라고 부족하기 때문에 그걸 이기려면 나에게 주어진 작은 재능이 글 쓰는 거니까 글로써 안정을 시키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 평생 150권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날 김 작가가 흰색 머리로 기자간담회장에 나타난 것도 주목을 끌었다. 그는 “제가 백발로 사진 찍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염색약을 포기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