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600일을 맞지만 종전은 커녕 세계는 두 개의 전쟁에 맞닥뜨리게 됐다. 소련 붕괴 이후 30여 년간 이어진 미국의 ‘1극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으로, 글로벌 경제·외교안보 질서에도 대혼란이 예상된다. 당장 예상되는 변화는 세계 경제의 블록화다. 우크라이나 전쟁 만으로도 세계 경제를 친미와 친러 진영으로 쪼개기에 충분했는데, 여기에 또 다른 전쟁이 발발했고 이를 두고 서방과 러시아, 중국 등은 다른 입장을 나타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 무역에서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추산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친미-친러 진영 간 교역은 같은 진영 내 교역보다 4~6% 느리게 성장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나라끼리의 교역이 둔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세계 무역량에도 불똥을 튀기고 있다. 최근 WTO는 “올해 세계 상품 무역 증가율이 지난해보다 0.8%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올 4월 전망(1.7%)에서 불과 반년 만에 수치를 반으로 낮췄다. WTO는 고물가·고금리와 함께 지정학적 긴장을 전망치 하향 조정의 이유로 꼽았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올해 무역 성장세 둔화 전망은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 수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일”이라며 “세계경제의 분절화는 이런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투자 행태에서도 세계경제 블록화에 대한 움직임은 뚜렷이 나타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지난해 1조 2000억 달러의 전 세계 그린필드 외국인직접투자(FDI) 중 약 1800억 달러(약 243조 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지 않은 국가에서 비난한 국가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전쟁으로 친미와 친러 진영이 갈라지면서 친한 나라로의 투자로 글로벌 트렌드가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린필드 FDI는 외국 자본이 투자 대상국의 용지를 매입해 공장 등을 짓는 투자 방식이다.
특히 중국으로의 투자가 급감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2분기에서 올해 1분기까지 미국 기업들의 중국으로의 그린필드 FDI는 팬데믹 이전 5년보다 57.9% 급감했다. 같은 기간 유럽 기업들의 중국으로의 투자도 36.7% 감소했다. 물론 중국의 초고강도 코로나19 봉쇄와 높아진 생산 비용 등이 반영된 것이지만 블룸버그는 “수년간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이익 극대화에 집중했던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이 점점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에 공장을 짓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전 세계 FDI 중 정치적으로 가까운 나라끼리의 투자 비중은 2010년 37.4%에서 지난해 50.2%를 기록하며 계속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철의 장막’이 형성되면서 세계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가 완전히 분절되는 극단적인 시나리오하에서 장기적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를 7% 갉아먹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유로존 내 1·2위 경제 대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GDP와 맞먹는 규모다.
보통 해외투자는 선진국 기업이 저렴한 생산 비용을 좇아 신흥국에 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선진 기술이 신흥국에 이전되고 신흥국 소득 수준 개선으로 이어졌는데 이제는 그 효과가 줄어들게 됐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올 초 블로그 글에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기술의 파급효과를 누리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역 위축도 문제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글로벌 경제의 지정학적 분열은 선진국의 저소득 소비자가 더 저렴한 수입품에 접근할 수 없게 한다”며 “소규모 개방 시장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무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형의 피해가 예상되는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페니 골드버그 전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블록화로) 국제 연구 협력이 어려워지면서 혁신도 줄어들고 가난한 나라로의 국제투자도 줄면서 전 세계적인 기아와 불평등도 늘어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