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 세 글자에서 첫 글자를 떼는 게 이렇게 어려웠다. 박현경(23·한국토지신탁)이 910일 만에 다시 우승 문을 열었다. 조바심을 버리고 그 자리에 채운 편안함이 결정적 열쇠가 됐다.
29일 제주 서귀포의 핀크스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박현경은 이소영(26·롯데)을 두 차례 연장 끝에 물리치고 시즌 첫 승, 통산 4승에 골인했다. 공동 선두로 출발해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이면서 합계 8언더파 280타를 적은 뒤 연장에서 파로 승리했다. 우승 상금 1억 4400만 원을 더한 박현경은 상금 랭킹 8위에서 5위(약 8억 3000만 원)로 올라갔다.
2021년 5월 2일 KLPGA 챔피언십 우승 뒤 2년 6개월 만의 통산 4승. 통산 3승 뒤 준우승만 아홉 번이고 올 시즌도 준우승 세 번으로 가슴앓이하던 박현경은 시즌 종료까지 2개 대회를 남기고 첫 승에 성공했다. 전날 3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마친 뒤 우승에 대한 간절함에 대해 “솔직히 엄청나게 간절한 시간은 지난 것 같다”고 했던 박현경이다. 그는 “간절한 마음은 조금 내려놓았고 오히려 편하게 경기하려 하고 있다”는 말처럼 연장에서 통산 6승의 강자를 만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이소영은 지난해 8월 대유위니아·MBN 여자오픈에서 2차 연장 끝에 박현경을 눌렀던 상대다. 그때의 아팠던 기억에 발목 잡힐 만도 했지만 박현경은 파-파로 비긴 뒤 이어진 두 번째 연장에서 파를 지켜 더블 보기의 이소영을 눌렀다. 지난해 서울경제 클래식 단독 2위 뒤 1년 만에 다시 찾은 핀크스에서 우승컵을 든 것이다. 6승을 전부 짝수 해에 올린 이소영은 첫 홀수 해 우승에 가까이 갔지만 마지막 티샷 실수가 아쉬웠다.
18번 홀(파4·409야드)에서 계속 진행된 2차 연장에서 박현경은 티샷을 잘 보내놓은 반면 이소영은 오른쪽 벙커로 보냈다. 박현경은 143야드를 남긴 두 번째 샷을 핀 앞에 잘 떨어뜨렸고 이소영은 108야드 벙커샷을 그린 앞 개울에 빠뜨렸다. 이소영은 결국 4온 2퍼트로 더블 보기를 적었고 박현경은 2퍼트 파로 마무리한 뒤 TV 인터뷰를 하며 눈물을 보였다.
2019년 데뷔한 박현경은 앞선 3승이 모두 무관중 경기에서 거둔 것이었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이번이 갤러리 앞에서 달성한 첫 우승이다. 박현경은 “팬분들 앞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수백 번, 수천 번 상상했다. 그 상상이 오늘 이렇게 현실이 됐다”며 감격해 했다. 그는 “제주의 변덕스러운 바람을 이용하는 법, 그린에서 퍼트 라인 보는 것 등에서 아빠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덕분에 믿고 경기할 수 있었다”며 투어 선수 출신의 ‘아빠 캐디’ 박세수 씨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4라운드 중반까지 선두와 3타 차인 임희정 등 공동 10위까지 무려 13명이 몰려 있었다. 이후 홀이 거듭될수록 하나둘 우승 경쟁에서 멀어져갔고 14번 홀부터는 박현경과 이소영의 결투였다. 박현경은 16번 홀(파5)에서 3m 버디 퍼트를 넣고 단독 선두가 됐지만 이소영도 만만치 않았다. 17번 홀(파3)에서 바로 5m 버디 퍼트를 넣어 8언더파 동타를 만든 것이다. 이제 쫓기는 쪽은 박현경이었지만 지난해 여름 똑같이 2차 연장 끝에 당했던 패배를 반복하지 않았다. 18번 홀은 2·3라운드에 연속으로 보기를 범한 ‘숙제의 홀’이었는데 박현경은 이날 세 번의 18번 홀 경기에서 모두 파를 잡는 집중력을 뽐냈다.
황정미가 5언더파 3위이고 데뷔 첫 우승에 도전했던 배소현과 이채은은 나란히 4언더파 공동 4위에 만족했다. 상금 랭킹 60위여서 내년 시즌 출전권을 위해 반드시 좋은 성적이 필요했던 이채은은 상금 58위로 올라가며 안정권을 눈앞에 뒀다. 시즌 종료 시점에 상금 60위 안에 들어야 시드전에 가지 않고 내년 출전권을 얻는다. 시즌 2승의 장타 1위 방신실은 4타를 줄이는 분전에 4언더파 공동 4위까지 올라갔다. 시즌 3승의 임진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 파이널 진출권을 따내고 돌아온 성유진도 공동 4위다. 임희정은 3언더파 공동 9위.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이소미는 10오버파 62위에 그쳤다. 16회째를 치른 올해까지 이 대회 2연패는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