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가임기 여성들은 임신, 출산에 관한 부담이 커졌다. 고령 임신의 기준인 35세가 넘어가면 임신 가능성이 감소하고, 임신에 성공하더라도 고혈압, 당뇨병 같은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아이를 여럿 낳은 여성도 출산 후 체중을 감량하면 당뇨병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문준호·장학철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팀은 임신성 당뇨병 및 임신성 포도당 내성을 진단받은 여성 455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8일 밝혔다.
연구팀은 4년간 출산 경험이 4회 이상인 다출산 그룹(79명)과 그 미만인 일반 출산 그룹(376명)으로 나눠 체중과 췌장 β세포, 인슐린 민감성 지수 등을 비교했다. 그 결과 다출산 여성에서 췌장 β세포 기능과 인슐린 민감성이 일반 출산 여성보다 감소돼 있었다. 췌장β세포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증식 능력을 잃고 텔로미어(염색체 끝부분에 존재하는 염기서열) 길이가 짧아지는 노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하지만 다출산을 했더라도 4년 동안 체중을 2.5㎏가량 감량한 경우 췌장 β세포의 기능이 향상되고 인슐린 민감성 지수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출산 후 체중이 증가한 여성은 췌장 β세포 기능이 30%나 떨어졌다. 출산 경험이 많을수록 췌장 β세포의 기능이 떨어질 위험성이 높지만, 체중을 감량함으로써 당뇨병 발병 위험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당뇨병은 췌장 β세포의 기능이 상실되어 인슐린 생산이 잘 되지 않고 고혈당 상태가 지속될 때 발병한다. 임신과 출산은 유전적인 요인이나 비만, 운동 부족 등 환경적인 요인과 함께 당뇨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임신, 출산 후 당뇨병 위험을 줄이기 위해 체중감량에 도움이 되는 식이요법과 운동, 수유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문 교수는 “다출산 여성의 췌장β세포는 여러 번 팽창·축소하는 과정에서 점차 노화되고 인슐린 분비 능력이 감소한다”며 “췌장 β세포의 기능 개선과 당뇨병을 막기 위해 출산 후 적극적인 체중감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SCI급 국제학술지 ‘실험 분자 의학(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