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如何)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이상의 ‘최후’)
이상은 장례식장에서 눈을 뜬다. 누군가 자신의 데드마스크를 본 뜨려던 감촉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궁금해진다. 누가 그의 데드마스크를 만들었나. 이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이며, 나의 진짜 얼굴은 무엇인가. 관 속 이상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지인들이자 그의 또 다른 조각들은 유고시 ‘최후’를 읊조린다. 사과는 곧 이상이다. 그의 죽음에 부서질 정도로 아팠던, 시인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걸어나간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꾿빠이 이상’은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을 그린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이다. 2017년 초연 이후 6년 만에 돌아왔다. 제6회 예그린어워드에서 혁신상·안무상·무대예술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김연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관객들이 이상의 문상객이 되어 그의 삶을 파헤치는 이머시브(관객참여형) 공연이다.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고 자유롭게 무대 공간에 착석해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관객들은 공연장 로비에 들어선 순간, 데드마스크를 전달받는다. 그와 동시에 로비 곳곳에서 야바위, 제기차기 등 옛 놀이를 하고 있는 배우들을 만나게 된다. 공연이 시작된 후에는 데드마스크를 쓰고 함께 그의 자아들로 분장한다. 공연 전부터 관객들이 이상의 자아를 찾는 난제에 함께 하면서 몰입감도 높아졌다.
이상의 시는 분열된 자아를 다룬다. 극 중에도 ‘오감도’ ‘거울’ 등 대표시 여럿이 등장해 혼란스러운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상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3명으로 나뉜다. 각각 자신이 누군지 혼란스러운 ‘감각의 이상(感)’,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지성의 이상(知)’, 자신의 얼굴을 찾고자 여러 사람을 만나는 ‘육체의 이상(身)’을 연기한다. 이외에도 김기림, 김유정, 최승희 등 동시대 예술가들과 변동림, 금홍, 옥희 등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출연해 그들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상을 증언한다.
작품은 이상의 삶을 둘러싼 모호함에 대해 하나의 답을 내리기를 거부한다. 대신 모두의 얼굴이 의미가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무용과 뮤지컬, 오케스트라 음악이 결합돼 이상의 감정을 조밀하게 서술한다. 공연은 오는 1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