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약 1시간을 차로 달리면 나타나는 작은 마을 클라크스빌. 옥수수와 밀밭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이 지역이 최근 디트로이트를 대체하는 전기차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인근에는 닛산·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 등 세계 유수 자동차 기업과 부품 업체 공장들이 터를 잡았으며 LG에너지솔루션·GM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인 얼티엄셀즈 2공장도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공급망 구축에 있어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는 테네시주에서 LG화학이 미국 최대 양극재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LG화학은 19일(현지 시간) 테네시주 클라크스빌에서 양극재 공장 착공식을 갖고 170만㎡ 부지에 1단계로 약 2조 원을 투자해 연간 6만 톤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짓는다고 밝혔다. 신학철(사진) LG화학 부회장은 “미국에서 첫 번째로 세워지는 대규모 양극재 공장으로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LG화학의 테네시 양극재 공장은 2026년 완공돼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양극재를 본격 양산한다. 매년 고성능 순수전기차(EV, 500㎞ 주행 가능) 약 60만 대분의 양극재를 만들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춰 미국 내 최대 규모 양극재 공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의 양극재 공장이 자리 잡는 테네시주는 주정부의 인센티브 혜택이 뛰어나며 인구 분포상 미국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물류상으로도 이점이 많은 곳이다. 신 부회장은 “테네시 공장은 처음에는 양극재 생산으로 출발하지만 앞으로 북미 지역의 종합전지 소재 센터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LG화학은 지난해 이미 GM과 양극재 95만 톤 장기 공급 포괄적 합의를 맺었으며 올 10월에는 도요타와 2조 9000억 원 규모 북미 양극재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LG화학의 미국 내 양극재 공장 건설은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테네시 공장은 LG화학과 고려아연의 합작사 한국전구체주식회사(KPC)가 울산에서 생산한 전구체를 사용하는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에서 광물·전구체를 공급받기 때문에 고객사의 IRA 조건을 충족시킨다. 향후 미국 내 양극재 생산 과정에서도 IRA에 따라 수천억 원 규모의 생산 세액공제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양극재 생산 과정에서는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는 동시에 친환경 공장을 구축한다. LG화학 테네시 공장은 열을 가하는 소성 공정 설계 기술을 고도화해 라인당 연산 1만 톤의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또 미국 내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와 소재 공급망 협력을 논의하는 한편 부지 인근 전력 공급 업체와 협력해 태양광과 수력 등 100% 재생에너지로 공장을 가동한다.
신 부회장은 최근 미국 내 전기차 시장이 주춤한 것과 관련해서도 “전기차 수요가 다소 둔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속도가 감소했을 뿐 여전히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며 “일시적 둔화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 계획이나 청사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내년 미 대선 이후 IRA 등 미국의 정책 변화와 관련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IRA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면서도 “중국이 전기차 공급망을 장악하고, 미국과 유럽 시장마저 중국에 뺏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수년전부터 (미국 내에) 있었고 이를 어떻게든 막아야 하겠다는 것이 공화당과 민주당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컨센서스”라고 밝혔다.
이날 착공식에는 빌 리 테네시주 주지사, 스튜어트 맥홀터 테네시주 경제개발부 장관, 마샤 블랙번 주 상원의원,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 등 정관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조 대사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테네시주에서 열린 이번 착공식은 양국 관계의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