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잠재성장률이 2011년(3.8%)에서 내년(2.0%)까지 14년 동안 한 번도 반등하지 않고 줄곧 추락한 유일한 국가다. 이 사실이 뼈아픈 것은 제대로 된 구조 개혁이나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경제는 속병이 단단히 들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이르면 우리나라가 2031년부터 0%대 성장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40년대 0%대 성장률을 예고한 것도 충격이었는데 이보다 10년은 더 빠른 속도다. 심지어 골드만삭스는 2060년대부터 한국 경제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2075년이 되면 파키스탄이나 필리핀에도 따라잡힐 것으로 봤다.
중장기적인 성장률 둔화 흐름은 단기 성장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OECD가 11월 내놓은 경제 전망에서 2025년 성장률이 2024년보다 낮은 국가는 회원국 38개국 중 한국과 멕시코 두 곳뿐이다. 2025년 기준금리를 연 2.50%로 현 수준보다 1%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보면서도 성장률을 낮춰 잡은 것이다. 재정·통화정책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없는 구조적 침체가 반영된 결과다.
문제는 구조적 침체를 벗어날 만한 어떤 구체적 움직임, 위기의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 회복의 주체가 돼야 할 기업은 반기업 정서, 생산성 역행을 방치하는 노조 등에 막혀 도약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실제 기업 투자를 이끌 규제 개혁, 세제 지원 등은 상투적인 균형 발전 논리와 부자 감세 프레임에 번번이 좌절돼왔다.
통상 기술 진보 등을 통해 가능하다는 총요소생산성의 성장 기여도는 2020~2022년 0.2%포인트까지 떨어졌다. 1991~2010년만 해도 2.0~2.1%포인트였던 수치가 추락한 것이다. 2010년대 이후에는 OECD 평균보다도 생산성 성장률이 낮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번 꺾인 생산성이 다시 높아지려면 새로운 기업이나 산업이 등장하면서 효율성이 확 높아져야 하는데 (기업에 호의적이지 않는 일각의) 사회 분위기, 단기 실적에 급급한 기업 경영, 산업 구조조정에 눈감은 정치권이 합쳐지면서 이제는 (기업들이) 해외로 나갈 생각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24년마저 구조 개혁 없이 지나간다면 저성장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비중이 70.7%로 전년(71.1%) 대비 줄어들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2025년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20.3%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원년이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올 만큼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진 상태라 파격적인 정책이 절실하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출생률 감소, 기후위기 등 여러 난제를 맞닥뜨린 시대에 선도적 어젠다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육성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기초과학 및 응용과학 사업화를 지원하고 최고 수준의 과학자를 양성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각성을 주문하고 있다. 대내외 악재로 한국 경제를 둘러싼 고충이 가중되면서 중장기적인 비전과 개혁 작업을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극한의 대립과 정쟁 속에서 되레 나라를 궁지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11조 원대 달빛고속철도, 지역사랑상품권 살포 등 난무하는 정치권의 총선용 포퓰리즘 경쟁이 생생한 실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수 감소에 따른 긴축 재정으로 재원의 안배가 중요한 해가 바로 2024년”이라며 “정치권의 (선심성 포퓰리즘 등) 후진적 행태가 계속된다면 한때 고속 성장으로 추앙받아왔던 한국이 이제 고속 쇠퇴, 고속 추락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