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의 무고한 민간인을 보호하고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휴전 협상이 무산될 위기다. 이스라엘이 국제 사회의 만류에도 140만 명의 피란민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 남부 국경도시 라파를 연일 공격하고 있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일방적 조치를 거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어서다. 카타르에 망명 중인 하마스 지도부도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 없이는 인질을 석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협상은 평행선을 긋는 양상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18일(현지시간) 각료회의를 열고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일방적 조치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제출한 결의문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영구 정착에 관한 국제사회의 강제적 권고를 즉각 거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지속해 일방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반대할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7일 학살 이후 행해지는 국가 인정은 테러에 전례 없이 큰 상을 주는 것으로 미래 평화 협약을 가로막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 이스라엘과 각기 다른 독립 주권 국가로 공존해야 한다는 ‘두 국가 체제’ 성사를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과 미국의 아랍권 동맹이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표를 포함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포괄적 평화 협상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6주 간의 일시 휴전과 영구 휴전 논의 개시 등을 골자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 중이던 협상도 이스라엘 협상단이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자칫 결렬될 위기다. 이스라엘군 완전 철수와 군사작전 종료를 요구하는 하마스와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가자지구내 하마스 현지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의 종적이 묘연해진 것도 협상을 어렵게 했다는 후문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열흘 넘게 외부와의 의사소통을 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17일 기자회견에서 당초 카이로에 협상단을 파견한 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면서 협상단을 재파견해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요 도시들에 대한 공격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가자시티와 칸유니스, 라파에서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잇따라 17일 밤 사이에만 최소 18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특히 라파는 가자지구 피란민들이 모여 있고 전체 가자지구 인구 약 230만명 가운데 140만명이 밀집해 군사 작전시 막대한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이스라엘을 말리고 있지만 네타냐후는 단호한 입장이다. 그는 17일 기자회견에서 “라파 군사작전을 중단하라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전쟁에서 패배하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7일 전쟁이 발발한 이래 가자지구에서는 약 2만9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하마스에 끌려간 인질 가운데 작년 일시 휴전 당시 100여명이 풀려나고 130여명이 남아 있지만 이 중 30명가량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