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대에 50년 동안 서는 게 목표예요. 달리기로 치면 반환점에 온 건데, 특별할 건 없지만 돌아가는 길은 오는 길과는 조금 달랐으면 좋겠어요."
가수 김범수가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그에게 반환점 같은 시기다. 무려 10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매했고, 그의 목표인 '50년 동안 무대에 서기'의 절반을 지나고 있다.
"진작 앨범을 냈어야 했는데,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고요. 개인적으로는 앨범, 공연 등을 하면서 아주 게으르게 지낸 건 아니었지만 앨범을 안 만드니 손에 결과물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작년 한 해를 다 바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10년 전 발매한 정규 8집 '힘'에서 김범수는 R&B와 힙합을 접목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신보는 다시 그의 주 무기인 정통 발라드로 돌아왔다. 욕심을 낼 법도 하다만 작곡·작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보컬리스트 김범수'에 방점을 둔 것이다.
"요즘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인기가 많은 건 사실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제가 곡을 수려하게 써서 제 목소리를 잘 담을 수 있을 만큼의 프로듀싱 능력을 갖출 자신이 없더라고요. 휘트니 휴스턴도 보컬리스트로서 너무나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가수잖아요. 저 역시 좋은 노래를 내 것으로 만들고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게 나의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김범수는 대표곡 '보고 싶다'를 비롯해 '끝사랑', '위로' 등 숱한 인기곡으로 2000년 발라드의 시기를 수놓았다. 다만 국내 대중가요에서 발라드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며 그도 타 보컬리스트처럼 고민에 빠졌다.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돌파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 그는 어떤 각오를 다졌을까.
"저를 포함해 또래 가수들이 매일 하는 고민이죠.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시대를 잘 타고나서 너무 큰 사랑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조금 주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역이 남아 있고,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으니 그저 제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번 앨범이 잘 되면 정말 좋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제가 계속해서 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제 자신에게 증명하는 것이에요. 대중에게도 제가 25년 그 이상으로 다른 이야기를 해 나가고 있다는 걸 많이 알리고 싶고요."
이번 정규 앨범의 테마는 '여행'이다. 어제가 후회되고, 내일이 두렵지만 용기내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이번 앨범으로 지난 25년의 여행을 갈무리하고, 앞으로의 25년을 그린다. 25주년이라는 반환점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다만 그는 앞으로 '돌아가는' 길은 힘껏 달려온 지난 25년과는 사뭇 다르길 바란다고 밝혔다.
"저는 무대에 50년 동안 서는 게 목표예요. 달리기로 치면 반환점에 온 건데, 특별할 건 없지만 돌아가는 길은 오는 길과는 조금 달랐으면 좋겠어요. 사실 가는 길은 좀 치열했던 것 같아요. 성공, 인기, 돈, 이런 것이 항상 제 목표 안에 있었죠.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그땐 그렇게 해야만 할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그러나 이제는 조금 천천히 가면 어떨까. 내가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저를 도와줬던 많은 분에게 마음도 전하고 보답도 할 수 있는, 그래야 50년을 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제는 여유 있게 앞, 뒤, 옆을 돌아보며 가길 바라고 있어요."
한편 김범수의 정규 9집 '여행'은 오늘(22일) 오후 6시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