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1.8나노급(18A) 파운드리를 처음으로 수주하면서 경쟁의 포문을 열었다. 연내 양산을 계획하고 있는데 삼성전자(005930)나 TSMC가 2025년 계획하고 있는 2나노 양산보다 한 박자 빠르다. 인공지능(AI) 칩셋과 파운드리의 공조로 부활하는 ‘윈텔(윈도+인텔)’ 연합이 엔비디아·TSMC·삼성전자에 의존하는 현재의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벗어나는 구도다.
인텔은 21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컨벤션센터에서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 다이렉트 커넥트 2024’를 열고 MS로부터 18A 수주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업계 전체 생산성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최첨단·고품질 반도체 공급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MS는 인텔에 어떤 칩셋을 주문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는 MS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AI 칩셋 ‘마이아(Maia) 100’ 후속작을 인텔에 발주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칩셋은 MS 클라우드 ‘애저’에 탑재돼 MS가 투자한 오픈AI의 챗GPT를 구동하는 데 쓰인다. MS와 오픈AI의 초거대 AI 전략에 인텔이 전략 파트너로 올라선 셈이다. 1990년대 PC 보급을 이끌었던 ‘윈텔’ 연합의 부활이다. 행사 말미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참석해 팻 겔싱어 인텔 CEO와 대담하며 긴밀한 관계를 보이기도 했다.
MS는 인텔과의 협력을 통해 엔비디아 개발, TSMC 생산이라는 AI 가속기의 공급망에서 선택지를 넓힐 수 있게 됐다. 반도체 공급난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엔비디아·TSMC의 독점에서도 벗어나 AI 개발 비용 절감이 기대된다. 인텔은 지난해 말 100억 달러(약 13조 원)이던 수주 잔액이 단숨에 150억 달러(약 20조 원)로 늘어나는 동시에 MS라는 대형 고객사 확보로 향후 영업에도 숨통이 트였다.
인텔은 MS로부터 수주한 칩셋을 연내 공급할 계획이다. 18A에서 자체 생산하는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클리어워터 포레스트’가 공장에 투입(Taped-out)됐음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5년으로 예정됐던 18A 공정 양산이 2024년으로 당겨진 것이다. 2021년 파운드리 복귀와 함께 인텔이 공언했던 “4년 내 5개 공정의 진입”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텔이 18A를 올해 양산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TSMC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TSMC는 2025년 2나노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인텔은 최근 확보한 ASML의 하이NA 극자외선(EUV)을 이용해 2027년까지 1.4나노급(14A)에 돌입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도 제시했다. 2022년 삼성전자와 TSMC가 발표한 로드맵과 같다. 반도체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인텔이 파운드리 후발 주자인 만큼 초기에 대규모 투자를 해 공정의 격차를 좁힌 뒤 1.4나노에서는 삼성전자·TSMC와 보조를 맞춰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TSMC와 힘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에는 인텔의 빠른 부상은 위험 요소다. 인텔은 이날 삼성전자를 제치고 2030년 세계 2위 파운드리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재확인했다. 동아시아에 편중된 반도체 생산을 북미로 되찾아오겠다는 미국 정부의 대전략도 삼성전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겔싱어 CEO는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80%가 동아시아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지를 북미와 유럽으로 돌려야 한다”며 “가장 안정적이고 탄력적인 생산망을 지닌 파운드리가 인텔”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