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가 불법 이민자를 체포·구금하거나 추방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연방항소법원이 해당 법안의 시행을 막았다. 이민자 이슈가 11월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텍사스주와 연방정부가 관련 법 집행 권한을 놓고 법적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다.
19일(현지 시간) 로이터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이날 텍사스주의 새로운 이민법 ‘SB4’의 시행을 막아달라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긴급 요청을 기각하며 항소법원에서 심리 중인 이 법의 집행정지명령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명령이 나온지 몇 시간 만에 제5연방항소법원은 이 법안이 시행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던 이전 판결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달 연방지방법원이 내린 금지 명령이 다시 효력을 발휘하면서 법안 시행이 다시 중단됐다.
텍사스주가 제정한 이 법안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를 주 사법 당국이 체포 또는 구금할 수 있으며 텍사스법원이 추방 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화당 소속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지난해 12월 법안에 서명하면서 제도 시행을 앞둔 상태였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텍사스 주법이 연방정부의 권한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며 올 1월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CNN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민 집행은 연방정부의 고유 기능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텍사스는 연방정부의 의지와 능력 부족으로 주정부에서 나서야 한다는 공화당 측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1심의 오스틴 연방판사는 바이든 행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하지만 2심을 심리한 제5연방순회항소법원은 본안 판결 전에 1심의 가처분 결정을 뒤집으면서 법 시행을 일단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대법원의 조치가 없을 경우 3월 10일부터 해당 법안이 효력을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는 다시 법 시행을 막아달라고 긴급 요청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두 차례 판단을 보류했다가 갑자기 19일 9명의 연방대법관 중 6명이 집행정지명령을 해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은 보수 측 인사와 진보 측 인사의 구도가 6대3을 이룬다. 반대 의사를 나타낸 3명 중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과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이 법을 두고 “이민 집행에 더 큰 혼란과 위기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연방대법원의 결정 직후 바이든 행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커린 잔피에어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SB4는 텍사스의 지역사회를 덜 안전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법 집행 기관에 부담을 주고 남부 국경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텍사스와 국경을 맞댄 멕시코 정부도 성명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텍사스주의 추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민정책은 주정부가 아닌 연방정부 간의 문제”라고 밝혔다. 이민자들도 SB4가 시행되면 주 당국에 의해 체포되고 추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만약 이 법안이 본안에서 최종적으로 허용된다면 공화당 성향의 다른 주정부도 잇따라 이민 법안 제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아이오와주도 입국이 거부되거나 추방된 사람들이 아이오와주에 들어오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