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막한 게임 업계 최대 이벤트, 게임개발자콘퍼런스(GDC) 2024에서는 인공지능(AI)과 함께 ‘블록체인 게임’의 열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글로벌 주요 게임사’의 지위에 오른 넥슨과 위메이드는 블록체인 게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1억 원을 돌파하는 등 가상자산 시장의 강세가 이어지자 블록체인 게임으로 열기가 번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는 블록체인 게임 출시가 막혀 있어 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GDC 행사에서 넥슨은 연내 출시를 예고한 블록체인 기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메이플스토리N’의 경제구조를 공개했다. 메이플스토리N은 넥슨이 대체불가토큰(NFT) 등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만드는 새로운 게임 생태계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의 첫 플래그십 타이틀 게임이다. 게임이 구동될 블록체인 메인넷은 아발란체(AVAX)다. 메이플스토리N이 흥행할 경우 아발란체 코인에도 호재다.
이날 연단에 오른 넥슨 블록체인 프로젝트 ‘넥스페이스’의 김정헌 전략 헤드에 따르면 메이플스토리N은 무한 생성되는 일반적인 게임 아이템과 달리 아이템 수량을 제한하고 수요에 비례해 가격이 책정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존 게임에서도 실현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지만 블록체인 기술 덕에 누구나 아이템 공급·교환에 따른 네트워크 전송 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 투명성이 담보된다. 게임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신뢰 문제도 블록체인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김 헤드는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에 다양한 블록체인 탈중앙화애플리케이션(DApp·디앱) 생태계를 만들고 꾸준히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GDC 메인 스폰서이기도 한 위메이드는 이번 행사에서 5차례의 발표 내내 자사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위믹스(WEMIX)를 강조했다. 19일 연단에 오른 서원일 위메이드 사업개발본부장은 “게임 산업의 다음 변화는 인공지능(AI)과 함께 블록체인이 주도할 것”이라며 “(위믹스 프로젝트는) 앞으로 수년간 발전하며 블록체인의 더 나은 활용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메이드는 12일 전 세계 170여 개국에 블록체인 기반 야심작 ‘나이트크로우’를 출시하고 5억 원 규모의 탈중앙화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을 조성하는 등 최근 위믹스 생태계 확장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올해 GDC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국내 게임사들도 최근 잇따라 신규 블록체인 제품·서비스를 내다. 넷마블은 15일 자체 블록체인 생태계 마브렉스(MBX)에서 멤버십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마블러십 NFT 2종을 신규 출시했다. 컴투스그룹의 블록체인 메인넷 엑스플라(XPLA)는 웹3 게임 ‘매드월드’를 단독 온보딩(출시)한다. 엑스플라 관계자는 “일본 웹3 게임 시장 진출과 파트너십 확대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웹3의 가치를 전하는 글로벌 웹3 콘텐츠 허브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이는 게임사들이 블록체인 사업에 대한 언급조차 꺼렸던 지난해와는 사뭇 대조적인 행보다. 지난해 1월에는 블록체인 게임의 사행성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5월에는 블록체인 게임 업계의 국회 로비 의혹이 논란을 일으킨 데다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의 가격도 침체된 상황에서 업계는 숨을 죽였다. 그나마 가장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전개하던 위메이드는 가상자산 발행량 사기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올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신고점을 돌파하고 가상자산 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블록체인 게임 업계 분위기도 반전됐다.
국내 게임사가 발행한 가상자산 시세도 반등하고 있다. 20일 오전 10시 48분 코인마켓캡 기준으로 최근 한 달 새 MBX는 110% 가까이 급등했고 XPLA 가격도 52% 올랐다. WEMIX와 카카오게임즈 보라(BORA)도 각각 22%, 13% 상승했다.
문제는 이들 가상자산 거래량의 90%를 차지하는 국내 시장에서 정작 블록체인 게임 출시가 막혀 있다는 점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게임 코인을 게임에서 쓸 수 없다 보니 오히려 투기성 자산으로 전락한 셈이다. 실제로 국내 게임 코인들은 거래소 상장 등 단기적인 호재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할 뿐 여전히 최고가 대비 90% 내려앉은 가격대에 머물고 있다.
국내 게임사가 인기 IP 기반의 블록체인 게임을 출시한다고 해도 국내 출시가 불가능한 이상 이용자 유입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을 실제로 즐기는 이용자보다 가상자산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이용자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블록체인 게임 관련 가상자산은 게임 출시 이후 반짝 급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규진 타이거리서치 대표는 “게임사들도 가상자산 활용처를 게임에만 한정 짓지 않는 종합적인 플랫폼 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가상자산 거래량이 국내에 치중됐다는 한계가 있다”며 “가상세계에서의 경제활동이 자연스러워지는 시점이 멀지 않았는데 영원히 블록체인 게임 출시를 막을 순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