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신학기가 시작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4월 학교와 회사, 새로운 회계가 일제히 시작된다. ‘새 출발’의 설렘과 각오가 한창이어야 할 이 시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의 인기어(트렌드워드)에 등극한 것이 있으니 바로 ‘퇴직’과 ‘퇴직대행’이다. “24년 졸업이지만 입사 하루 만에 그만뒀다”, “어제 사표 던지고 왔다” 등 첫 출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근황 글부터 퇴직하고 싶은 사람을 대신해 퇴직 절차를 진행해주는 대행업체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일본 도쿄 오타구의 한 퇴직 대행 서비스 업체의 경우 올 4월 15일까지 총 678건의 대행 의뢰를 받았는데, 이 중 110명이 신입사원이었다. 이들은 ▲미리 들었던 업무 내용과 실제 업무 내용이 다르다 ▲정규직으로 채용됐는데 파견직이었다 ▲입사 전 설명으로는 복장·두발 자유였는데, 머리 색이 밝다는 이유로 입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업무 30분 전 출근하니 신입은 1시간 전에 나오라고 했고, 일찍 나와도 수당은 없다고 했다 등을 퇴사 이유로 들었다. 사전에 들었던 업무 내용이나 조건이 실제와 다르거나 불합리한 처우가 많았으나 일부는 ‘상사 등에 불만은 없지만 내가 회사 풍조와 맞지 않다’고 말하는 사례도 있었다.
연이은 신입사원의 퇴사는 이직률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후생노동성 조사에서 4년 전인 2020년 3월 대졸자 신입사원 중 취업 후 3년 이내 이직한 사람 비율은 32.3%였다. ‘3년 내 이직률’은 최근 10년 이상 30%를 넘는 수준을 기록해 ‘10명 들어오면 3명 이상이 옮긴다’는 상황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렇다 보니 입사와 동시에 ‘이직 서비스’를 등록해두는 사회 초년생들도 적지 않다고. 대형 이직사이트를 운영하는 파솔커리어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 2023년까지 4월 기준으로 가입자가 30배 가까이 늘었다.
돈도 중요하지만, 성장 가능성·존경할 만한 선배…
양→질 기준으로 회사와 합 판단하는 신입사원들
양→질 기준으로 회사와 합 판단하는 신입사원들
신졸(신규 대졸)자 중심의 젊은 층이 입사 초 이직하는 이유도 변화하고 있다. 대형 이직사이트를 운영하는 파솔커리어가 지난해 이직을 경험한 성인 800여 명을 대상으로 회사를 경험한 이유를 조사해 전년 결과와 비교했더니 20대에서는 이직 이유 1위가 2년 연속 모두 ‘급여가 낮고, 승진 전망이 어렵다’였다. 반면 2022년 8위였던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2023년 2위로 껑충 뛰었고, ‘직원을 성장시킬 여건이 안된다’도 2022년 14위에 그쳤지만, 2023년에는 3위에 올랐다.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2022년 16위에서 2023년 4위로, ‘존경할 사람이 없다’가 2022년 11위에서 2023년 7위로 바뀌었다. 급여, 근로시간 같은 양적인 조건보다는 개인의 성장 여건이나 동료, 자아실현 등에 대한 조건이 이직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로 바뀐 것이다. 이 조사는 총 36개 항목에서 해당하는 내용을 모두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노동력 부족 속 구직자 우위 시장 전개에
“골라 갈 수 있다” 부담 덜한 이직·퇴사 결심
“골라 갈 수 있다” 부담 덜한 이직·퇴사 결심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남의 돈 받아먹고 사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가 이처럼 쉽게 이직을 선택할 수 있는 배경엔 ‘일손 부족’이 있다. 그만둬도 다음을 찾기 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3월 졸업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지난해 12월 초 시점 2개 기업 이상으로부터 합격을 통보받았다는 학생은 63%, 4개 이상이라는 응답은 20%로 나타났다. 대졸자 입장에서 ‘골라갈 수 있는’ 환경이, 기업 입장에선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일본에서는 ‘판매자 시장’이라고 한다. 취업, 이직에 있어 시장 상황을 수요·공급에 따라 ‘판매자 시장’, ‘구매자 시장’으로 나누는데, 전자는 기업의 구인 수가 구직자 수보다 많은 상황이다. 일을 찾는 사람(공급)에 비해 인재를 찾는 구인(수요) 쪽이 많은 상태다. 그 반대인 ‘구직자 > 구인 구직자 수’인 상황이 구매자 시장으로 ‘취업 빙하기’라 불리는 취업난이 이에 해당한다. 판매자 시장이냐 구매자 시장이냐를 결정하는 중요 기준은 ‘유효 구인 배율 수’로 이 수치가 1배를 넘으면 판매자 시장이 된다. 예컨대 10명의 구인에 대해 희망자가 5명에 그칠 경우 유효 구인 배율은 2배다. 같은 10명의 구인에 대해 20명이 응모하면 유효 구인 배율은 0.5배가 돼 구매자 시장이 된다.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2009년 일본의 유효 구인 배율은 역대 최저인 0.42배를 기록했다. 이후 2013년까지 1배 미만이다가 2014년부터 다시 판매자 시장으로 전환했다. 올해 2월 기준으로 이 수치는 1.26배였다.
“안맞으면 일찍 그만두고 다음 찾는 게" 인식
노동법 전문가인 미즈마치 유이치로 와세다대 교수는 “일손 부족으로 그만둬도 다음을 찾기 쉽기에 이직 의사표시를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에게 맞지 않으면 가급적 빨리 결단을 내려 다음을 찾자’, ‘나와 안 맞으니 그만두겠다’라고 의사를 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등한 계약 당사자 간에 가능한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환경 변화와 맞물려 젊은 세대의 의식 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과거 ‘종신고용’ 문화하에서는 입사 후 최소 3년은 근무해야 퇴사 때 ‘관두는(옮기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평가를 덜 받았다면 지금은 회사와 맞지 않을 때 일찍 그만두고 다음을 찾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
기업이 ‘선택받는’ 시대, 면접관·방식 구직자가 정한다?
기업들은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구직자들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07년 창업한 일본 도쿄의 한 디지털마케팅 회사는 매년 10명 전후의 신규 졸업자를 채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5년 졸업자들의 입사 전형부터 학생이 1차 면접의 면접관을 지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한다. 면접 대상자들이 20명 안팎의 회사 직원 프로필을 확인하는데, 이 프로필에는 당사자의 입사 전 경력, 입사 후 담당 업무, 일에서 보람을 느낀 순간, 취미나 휴일을 보내는 방법 등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다. 프로필을 열람한 구직자들은 이후 면접을 보고 싶은 담당자 5명을 선택한다. 이후 희망 일정을 선택하면 사측이 면접 응시자에게 (선택지 중) 최종 면접관이 누구인지 전달하고, 실제 면접을 진행한다. 면접 응시자 편의를 도모한 일명 ‘커스터마이징 면접’이다. 또 다른 동영상 전송 서비스 제공 업체도 응시자가 면접관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1대 1 면접·그룹토론 등 면접 형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쿠리타 다카요시 취업 미래 연구소 소장은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채용 시책, 인사 시책이 이제 한계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