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10일 “1인당 25만 원의 지원금을 지역사랑상품권 형태로 지급하고 올해 말까지 소비하도록 하는 특별조치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밝힌 데 대해서는 “금투세 도입 시 주식시장이 폭망한다는데, 근거 없이 공포를 과장한다”며 “2025년 1월 1일부로 시행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당장 정부의 고유 권한인 예산편성권을 우회하려는 거야의 계속된 시도에 기획재정부는 당혹감을 넘어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통해 민생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이날도 물가 잡기를 위한 현장 행보에 나섰지만 거대 야당과 마주하고 있는 관가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것이다.
1인당 25만 원 지급만 해도 13조 원가량이 필요한데 이 돈이면 파격적인 반도체 보조금이나 연구개발(R&D)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관료들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의 특별법 거론은) 야당이 정부를 우회해 당론을 추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반대로 정부 정책 중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어차피 국회로 가면 안 된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 보조금을 주는 것은 국회에서도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찬반이 있는 사안이지만 먼저 백기를 든 셈이다. 금투세에 관해서도 세무 당국은 “야당의 반응을 보면 폐지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필수적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원자력발전 신규 추가 계획이 담길 것으로 보이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놓고도 산업부 내부에서는 야당 눈치 보기와 함께 다음 정권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총선에서 야당이 대승을 거두면서 국회에 어떻게 저희 안건을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며 “정권이 3년이나 남았는데 정책 동력이 꺼질 수 있어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공무원들이 야당 탓만 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관료는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 관가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2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정책 동력이 꺼질 수 있음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동시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과거와 달리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책 추진 의지가 상당히 약해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주도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지만 관료들의 복지부동이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에너지 정책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올해 초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를 통해 원자력발전 확대 기조를 명확히 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총선과 맞물리면서 시기가 뒤로 밀리는 듯한 상황이 연출됐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총선 이후인 이달 7일 “원전 생태계를 복원해 잘 활용하되 태양광과 해상풍력도 체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회와 협조가 되지 않으면 대통령실에서라도 소통을 통해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으니 관료들도 일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막판까지 국민연금 모수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22대 국회로 공이 넘어가면서 허탈감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나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밸류업 관련 세제 지원책도 야당의 반대로 관철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정부 내에서 나온다.
일부 부처는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환경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 탄소배출권 활성화 등 주요 정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2030년까지 420만 대를 보급하겠다고 했던 전기차의 지난해 말 누적 등록 대수는 55만여 대에 불과하다. 탄소배출권 시장 개편안을 지난해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발표 시점이 올해로 밀렸다. 금융위원회도 김주현 위원장의 교체설이 나온 뒤 급작스럽게 유임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부처의 생동감이 많이 줄었다는 지적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대통령실이 지나치게 나서면서 정부의 정책 대응력과 입지가 더 떨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대주주 양도세나 기업 출산지원금 혜택 등에서 ‘기획재정부 패싱’ 논란이 제기됐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실상 세제실장처럼 세부적인 것을 직접 챙기니 일할 맛이 안 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개각을 비롯해 부처 분위기를 쇄신하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경제정책을 최대한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통해 언급한 정책 과제 역시 244개나 산적해 있고 경북과 전북 등지에서의 민생토론회가 다음 주부터 재개되기 때문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쟁점 법안 등을 중심으로 정부가 야당과 시각차를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