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인들이 사기 범죄에 유독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빈곤율이 꼽힌다. 상대적으로 금융 지식이 부족한 노인들이 노후에 대한 불안감까지 시달리며 사기꾼들의 유혹에 더욱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1위였다.
전체 평균(14.2%)보다 세 배 가까이 높은 것은 물론 회원국 중 유일하게 40%를 웃돌았다. 한국 다음으로 높은 에스토니아(34.6%), 라트비아(32.2%)는 30%대를 지켰고 일본(20.2%)과 미국(22.8%)은 우리나라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66~75세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31.4%, 76세 이상은 52.0%로 고령층으로 갈수록 빈곤율이 높아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노후 대비는 부족해 노인들이 사기에 더욱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김민정 충남대 소비자학과 교수와 김은미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전임연구원의 ‘금융 사기 유형과 피해 유경험자의 특성’ 논문에 따르면 50세 이상 중고령자의 경우 총자산 규모가 금융 사기 피해 가능성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50세 미만 집단은 총자산 규모와는 상관없이 객관적 투자 지식이 낮을수록 피해 가능성이 높았다.
노후 대비 부족은 심리적 불안을 낳고 이는 당사자로 하여금 사기 유혹에 더욱 취약하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진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왜 어떤 사람은 금융 사기에 더 취약한가?’ 논문에서 ‘정서적 고통’과 ‘금융 몰이해’ 두 가지를 금융 사기 취약성을 진단하는 핵심 성분으로 지목했는데 ‘노후자금 걱정에 따른 불면과 무기력’ ‘전화요금·전기세·관리비 납부 어려움’ 등이 정서적 고통을 유발하는 주요 항목으로 분류됐다.
해외 연구 역시 자산과 정신건강을 노인의 사기 취약성을 좌우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미국 미시간대 의료정책·혁신연구소(Institue for Healthcare Policy & Innovation)의 지난해 연구에 따르면 가계소득 6만 달러 이하인 중노년층의 54%가 “사기당한 적이 있다”고 답변해 소득 6만 달러 이상(38%) 집단과 비교해 16%포인트나 높았다. 또 본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보통’ 혹은 ‘나쁨’으로 분류한 노인의 41%가 사기 피해 경험이 본인의 재정적·정신적·육체적 안녕에 큰 타격을 줬다고 대답했다. 이는 정신건강이 ‘좋음’이라고 답한 노인의 10%보다 31%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 확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노인들은 기본적인 금융·경제 지식 자체가 젊은 세대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3년 전 국민 경제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70대(46.8점)과 60대(53.6점)의 점수가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았다.
한 교수는 “노인은 생애주기상 보유 재산을 소진해가는 단계에 있는 만큼 오히려 더 철저하게 돈을 관리해야 한다”며 “쉽고 개인화된 콘텐츠로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고령자 공동체를 통해 교육을 제공해 노인의 자발적 참여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