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이례적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무더위가 밤낮으로 이어지고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면 거리는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한다. 온열 질환자가 하루에 100명 선을 훌쩍 넘고 돼지·가금류 등 가축도 올여름 35만 마리가 폐사했다고 한다. 흙과 땀으로 얼룩진 작업복을 싸맨 건설노동자와 폐사한 어류에 망연자실한 양식장, 쪽방촌 이웃들 등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현장이 늘고 있다.
냉방 수요로 전력 사용도 크게 늘었다. 정부는 이번 주가 전력 수요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5일 전력 수요는 93.8기가와트(GW)까지 치솟았다. 4년 전 여름철 최대 수요(89.1GW)에 비해 4.7GW가 늘었다. 신형 원전(1.4GW급) 3기에 해당하는 전력량이다. 공급 면에서 충분히 대비해 놓았다고 하지만 폭염과 태풍이 이어질 것이 예상되면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2011년 9월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실시했던 순환 정전 당시 도로는 아수라장이고 공장은 멈췄다. 엘리베이터도 금융거래도 마비였다. 피해 신고만 9000건이었다.
폭염만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이 이끄는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서도 전력 수요 급증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우리가 인터넷 검색 때 쓰는 전력이 0.3와트시(Wh)라면 생성형 AI 검색은 그 10배(2.9Wh)가 필요하다. 챗GPT 메시지나 그림을 기다리면서 2~3초간 버퍼링을 겪은 경험도 흔하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50년 전력 수요가 지금보다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탄소 중립 시대를 준비하는 국가와 기업들은 청정에너지 확보 경쟁에 한창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총투자액의 80%를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투입한다. 유럽연합(EU)은 재생에너지·수소에 투자 중이며 중국은 청정에너지와 전기차, 태양광 모듈 제조 1위국에 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아마존 등의 기업들은 무탄소 전원 확보에 노력 중이다. 전기를 확보한 국가,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전자(電者)생존’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의 전력 공급 능력은 충분할까. 해안가에 발전소를 짓는다 하더라도 계통부터 쉽지 않다. 전력 송배전망 건설이 민원에 막혀 차질을 빚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미래 에너지믹스도 논란이다. 전체 에너지의 94%를 수입해야 하는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 이분법적 논쟁과 대립이 확산돼 건설적인 논의는 잘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마냥 좋거나 나쁜 에너지원은 없다. 에너지원마다 환경성, 경제성, 유연성, 안전성, 사회적 수용성 면에서 일장일단이 있다. 미래 에너지원 확보, 인프라 구축 등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국회의 역할도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전력망확충특별법·해상풍력특별법 등 에너지 전환 관련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하고 원전·수소 등 활용 가능한 모든 무탄소에너지에 대한 폭넓은 정부 지원을 뒷받침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에너지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
1887년 경복궁 연못에 첫 전기가 들어온 날, 사람들은 너무 놀라 도깨비불이라 했다. 이후 국가 경제발전과 같이 하면서 한강의 기적의 밑거름이 됐다. 지구온난화 시대, AI 혁명 시대에도 한국 기업들이 전력(全力) 질주할 수 있도록 전력(電力)도 질주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