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정비 사업 암초 된 기부채납…사업성 악화에도 지자체, 과거 잣대로 밀어붙여

정부가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정비사업 기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기부채납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간 갈등 격화로 사업에 급제동이 걸리고 있다. 양측이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하면서 일부 사업장은 사업 재검토에 나서는 등 해법을 도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3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여의도 등 서울 지역 정비사업지에서 기부채납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그간 재건축에 속도를 내지 못하던 시범아파트는 2022년 신속통합기획안 확정으로 사업에 물꼬를 텄지만 서울시가 기부채납 시설로 노인 주간보호시설인 데이케어센터를 요구하자 소유주들이 반발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특히 일부 소유주들은 단지에 기부채납을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추가로 내걸고 집회까지 개최하는 등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이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무려 응답자의 42%가 데이케어센터 계획이 삭제될 때까지 정비사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을 정도다.



신통기획을 통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압구정3구역 조합은 서울시가 제시한 공공보행교 기부채납안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조합원들은 공공보행교와 부대시설 설치 비용이 약 4000억 원에 달해 조합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반대한다. 더욱이 단지 인근에 설치되는 보행교를 오가는 이들로 인해 주거 환경까지 악화할 수 있어 서울시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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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 최초의 공공재건축으로 관심을 모았던 신반포7차 조합은 서울시의 기부채납 요구를 거부하고 새로운 계획안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신반포7차는 지난해 6월 공동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기존 3종 일반주거에서 준주거로 종 상향을 하는 대신 공공기여율을 16%로 하는 내용의 재건축 계획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15%의 추가 기부채납을 요구하자 서울시의 요구가 과도하다며 현재 종 상향이 없는 재건축 계획안 마련에 나선 상태다. 조합 관계자는 “기부채납 증가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이 커 종 상향을 포기하고 대신에 역세권 용적률 특례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개포현대2차 소유주 역시 올해 4월 재건축사업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안) 공람 공고와 주민설명회까지 진행했지만 기부채납 시설로 데이케어센터가 결정된 것에 반발하면서 현재는 조합 설립 동의율조차 못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실정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사비가 급격하게 오르며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과거와 같은 잣대로 기부채납을 요구하면서 기부채납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격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기부채납 갈등이 극심해진 가장 주된 원인은 공사비 상승”이라며 “과거에는 기부채납을 해도 정비사업으로 무조건 이득을 봤지만 이제 공사비 상승으로 조합원이 분담금을 내야 하는 등 판이 달라졌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지자체가 과거의 잣대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부채납의 목적 자체가 수익성을 공유하고 그 대가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인 만큼 합리적인 수준에서 절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기부채납은 정비사업을 통해 과도한 수익을 올리는 조합에 분담을 지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기부채납 방식 자체를 원점에서 되돌아봐야 한다”며 “기부채납 수준을 낮춰주면 장기적으로 분양가 상승 속도도 낮춰질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현 상황에서는 공공이 한 발 양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기부채납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기부채납 시설은 공원이나 도서관, 도로 등이었지만 이제는 일명 기피 시설로 불리는 것들로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주민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는 만큼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인센티브를 받아야만 사업성이 확보되지만 기부채납이 인센티브의 전제 조건이 된 상황에서 이 같은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인허가권자인 지자체와 토지 소유주인 주민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벌이는 것”이라며 “개발을 더 원하는 어느 한쪽이 물러설 때까지 시간만 끄는 양상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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