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영역에서 재량준칙이라는 것이 있다. 행정기관이 스스로 설정한 재량 행사의 기준을 말한다. 최근에는 구체적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수준으로 재량준칙을 정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그 결과 행정규칙에 따른 것이기는 하나내용이 위법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39조는 제2항에서 ‘공기업·준정부기관은 공정한 경쟁이나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사람 등에 대하여 일정 기간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3항에서는 입찰 참가 자격의 제한 기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제15조는 ‘기관장은 공정한 경쟁이나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자에 대해서는 국가계약법 제27조에 따라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제2항제2호가목은 ‘입찰공고와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의 주요조건을 위반한 자’를 입찰참가자격제한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계약담당자가 입찰공고와 계약서에 ‘계약의 주요 조건’ 내용을 망라적으로 기재하는 경우가 있다. 공정한 경쟁이나 계약의 적정한 이행과 관련이 없는 사항도 추가된다. 그리하여 성과물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를 ‘계약의 주요 조건’을 위반한 때로 보아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한다.
미리 정한 기준에 따른 처분으로 정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재량준칙은 행정의 내부 지침에 불과하고, 해당 내용이 항상 정당하지는 않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에 입찰용역계약서의 ‘계약의 주요 조건’ 항목에 기재한 사항을 위반했다는 사유로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을 한 사안에서, 용역계약서에 ‘계약의 주요 조건’이라고 기재된 사항을 위반하였다는 것 만으로는 ‘공정한 경쟁 또는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해당 위반 행위 내용을 실질적으로 살핀 후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을 취소했다(서울행정법원 2024년 7월 12일 선고 2023구합67354 판결). 미리 정해 고지된 행정청의 내부 지침에 따른 행정처분이라 하여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니고, 행정처분의 실질 내용이 정당해야 적법하다는 당연한 법리에 따른 정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