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2%로 조정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연금 개혁 정부안을 발표했지만 연금 개혁이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소득보장론을 지지하는 야권과 시민단체는 정부의 소득대체율 인상 폭이 2%포인트에 그쳤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재정 안정성 확보를 위한 자동 조정 장치에 대해서도 “더 내고 덜 받으라는 것”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이번 개혁안의 또 다른 축인 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에 대해서도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갈라치기라고 반발하고 있어 논의 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 제안한 연금 개혁 방안은 그동안의 국회 논의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인정하면서도 “연금 개혁은 국민의 노후와 미래 세대의 삶이 걸린 문제인 만큼 모든 국민이 납득 가능한 방안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며 사실상 정부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야당은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 적용과 자동 조정 장치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보험료 인상 속도를 다르게 적용할 경우 청년층과 중장년층 사이의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동 조정 장치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입하면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이 지금보다 더 뒷걸음질 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정부안은) 한마디로 보험료는 좀 더 내고 나중에 받는 연금은 줄이자는 이야기”라며 “연금의 지속 가능성도 중요하겠지만 그러면서 나중에 덜 받자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도 반발했다. 보건복지부가 이날 ‘연금 개혁 추진 계획’을 공식 발표하기 전 개최한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는 민주노총·한국노총 대표가 공식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21대 국회에서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자고 합의한 것은 소득대체율 42%를 전제한 것이 아니었다”며 소득 보장 강화를 주문했다. 자동 조정 장치에 대해서도 “연금 급여가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해 실질 연금 소득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요구대로 정부가 구체적인 안을 발표했으니 서둘러 연금 개혁 논의를 시작하자고 촉구했다. 박수영·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 간사를 맡고 있는 국민의힘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연금 개혁안 발표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21대 국회에서 논의됐던 모수 개혁에 더해 구조 개혁 방안까지 포괄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금 고갈이 가시화하고 있으니 여야가 합의하는 모수 개혁을 통과시키는 동시에 내년 정기국회 전까지 1단계 구조 개혁을 완수하자는 대국민 약속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가에서는 연금 개혁의 공이 국회로 넘어왔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보고 있다. 논의 기구 구성부터 여야의 신경전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보건복지위원회 내에서 연금 개혁안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연금 개혁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시민 공론화를 마친 뒤 합의에 거의 이르렀는데 이를 거부한 것은 윤 대통령이었다”며 “정부가 안을 냈으니 복지위에서 심의받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했다. 소관 상임위가 나서야 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웠지만 복지위 구성에서 야당이 우세하다는 점을 의식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재 복지위 소속 위원 24명 중 야권은 민주당 14명, 조국혁신당 1명 등 총 15명으로 과반이다.
국민의힘은 상설 특위와 함께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연금 개혁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인 과제이니 여야 동수로 구성된 별도의 논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국민의힘 연금특위는 입장문을 내고 “당장 국회에 상설 연금개혁특위를 설치하자”고 요구하며 “위원회 기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복지부·고용노동부·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 장관들까지 참여하는 여야정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재정 안정성 제고를 중심으로 연금 개혁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 개혁 과정에서 정부가 구체적인 안을 낸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하며 “다시 한번 정치권이 나설 때”라고 말했다. 연금연구원 관계자는 “연금 개혁과 같은 과제는 충분한 사회적 대화를 거치지 않으면 정치 지형이 바뀜에 따라 무산되기도 한다”며 “여야가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해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