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 직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격적인 대선 후보 사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급부상 등 반전이 거듭되고 있는 미국 대선은 초박빙 상태다. 8월 19일부터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의 컨벤션 효과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지 않고 트럼프에 대한 성추문 입막음 재판 선고가 대선 이후로 미뤄지면서 최근 여론조사에서 다소 밀리던 트럼프가 반등 기회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주별로 승자가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 때문에 두 후보 모두 경합주인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 지역과 애리조나 등 선벨트 지역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합주와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기존 입장을 번복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두 후보 간 정책 차별화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해리스는 2020년 대선 때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보호 차원에서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수압 파쇄법(프래킹)을 금지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를 번복했고, 전기차 의무화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는 등 이민·환경·의료보험 등 9개 분야에서 ‘우클릭’하는 전략을 택했다.
대외 정책의 경우 해리스가 바이든의 동맹과의 협력 강화 기조를 이어받고 있지만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미국 우선주의’가 바탕이 되고 있다.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동맹의 경우도 무임승차가 불가하다는 트럼프의 입장이 직접적이고 다소 투박해 보일지는 몰라도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오히려 설득력이 클 수 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중국 때리기’가 블루칼라 유권자들에게 통한다는 학습 효과가 생겼기 때문에 해리스도 중국에 대해서는 입장이 강경하다. 두 후보 간 ‘친환경’ 여부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 강화를 위해 미국 내 생산을 독려하는 적극적 산업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양측 모두 미국 내 제조업 투자에 인센티브를 주고 첨단기술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외국 기업에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크다.
누가 되든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미중 갈등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과의 교역·투자 규모가 막대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한국 기업들이 투자할 당시 미국 정부가 했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정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믿고 국내 4대 그룹이 미국에 투자를 약속한 금액이 104조 원을 넘는다. 그러나 트럼프가 IRA 및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를 공언하고 있고 해리스도 기존의 친환경 정책에 거리를 두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최근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기반한 기존 투자 전략을 재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의 대선 결과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한미일 공조 강화가 전적으로 제도 및 시스템에 기반한 것이라면 미국과 일본의 정상이 바뀌더라도 공조 체제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정상 간의 유대 관계가 공조 체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정상이 바뀌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지금은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 유연한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8월 22일 정부가 발표한 ‘통상정책 로드맵’을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
정부의 로드맵은 ‘연대·공조의 통상을 통한 국익 극대화’라는 비전하에 ‘글로벌 통상 중추 국가’ 실현을 목표로 세계 1위 자유무역협정(FTA) 경제 운동장 확보, 핵심 품목 공급망 안정 및 경제 안보 강화, 4대 주요국과 전략적 협력 강화, 글로벌 사우스와 경제협력 지평 확대 등 6대 세부 추진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통상 환경의 변화를 반영해 공급망 안정화와 경제 안보를 강조한 점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4대 주요국, 특히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전략은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한 공세적 산업·통상 정책의 수립과 최근 급변한 한중 간 산업구조를 반영한 대중국 정책 가이드라인 제시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