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은행

수술 확인서, 상속 결정문이 대출 구비 서류… “여기가 은행인가요 관공서인가요?

은행, 실수요자 보호 위해 대출 허용 '예외 조항' 내놓지만

예식장 계약서·상속 결정문·이혼 서류 등 증빙 요구

시시각각 변하는 대출 정책에 은행원도 "너무 복잡해"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의 개인대출 창구. 연합뉴스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의 개인대출 창구. 연합뉴스




가계대출 급증세를 막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던 은행들이 이번에는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예외 규정을 쏟아내고 있다. 투기가 아닌 실수요 목적으로 은행을 찾은 사람들까지 퇴짜를 맞는 일이 반복되자 ‘실수요자 피해는 없어야 한다’며 각종 조치를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실수요자 증명을 위해 은행에 각종 ‘구비 서류’를 내야 할 정도로 까다로워지고, 은행마다 정책도 달라 대출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 정책이 시시각각 변해 은행 직원들도 완벽하게 (정책을) 숙지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창구에서 상담하는 직원들도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실수요자의 경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1주택자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신규 주택담보대출 받지 못하도록 한 KB국민은행은 이날 주택 매도 계약서와 계약금 입금 내역 등 기존 주택을 처분하겠다는 증빙 서류를 지참하면 주담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출 실행 6개월 이내에 결혼을 하거나, 2년 내에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실수요자로 간주해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는 청접장이나 예식장 계약서, 상속 결정문 등을 은행에 내야 한다.



현재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를 1억 원으로 묶고 있지만, 임대차 계약서를 구비하면 한도(1억 원) 이상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세입자에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기 위해 주담대를 받는 임대인을 감안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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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도 1주택자가 주담대를 받을 시 대출 실행 ‘당일’에 원래 보유한 집을 파는 경우라면 이날부터 주담대를 내주기로 했다. 1주택자는 기존 집을 처분하는 경우라도 주담대를 원천적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에서 한 발 물러난 것이다. 또 △ 혼인관계증명서 △폐쇄가족관계증명서 △사망확인서 △임신진단서(확인서) △수술확인서 또는 입·퇴원확인서 등을 제출해 실수요자임을 입증하면 최대 1억 원 한도 내에서 연 소득 150% 까지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1주택자에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도 내주지 않기로 한 우리은행도 9일부터 일부 예외 조항을 운영하고 있다. 결혼이나 상속을 앞둔 사람은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이 때 필요한 서류는 청첩장과 예식장 계약서, 상속 결정문이다. △취업이나 이직 또는 발령 △자녀교육 △질병치료 △이혼 △부모 봉양 등을 위한 전세대출도 가능해졌는데 인사 발령문과 가족관계증명서, 이혼의 경우 법원의 소송 서류 등이 구비 서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대출 ‘절벽’은 피한 셈이지만, 실수요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서류를 은행에 제출해가며 대출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혼을 위해 은행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 A씨는 “주택 계약서 정도는 원래 (은행에) 내던 서류지만, 관공서도 아니고 예식장 계약서까지 꼭 필요한가”하고 말했다.

‘난수표’처럼 얽힌 은행 대출 정책이 외려 대출 문턱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보통 은행 2~3 곳에서 대출을 알아보는 소비자들은 은행마다 다른 대출 정책 자체를 문턱으로 느낄 것”이라고 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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