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학기술 인재에 대해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기술 패권 시대에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우수 인재 확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학령인구 감소와 의대 쏠림 현상으로 과학기술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3월부터 이공계 활성화 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과학기술계와 산업계를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전략을 마련했다.
27일 열린 ‘제3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논의된 ‘과학기술 인재 성장·발전 전략’의 핵심은 이공계로 우수 인재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노력과 결과에 걸맞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과학기술인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국가적으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과학기술 인재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고 노력과 성과에 상응하는 경제적 처우를 받도록 보상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이공계 인재 유입 통로인 영재학교와 과학고 등 교육기관을 확충한다. 올해 2427명인 과학 영재(고등학생) 입학생 선발 규모를 늘리고 첨단산업 분야의 마이스터고도 현재 57개교에서 2027년 65개로 확대한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생계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국형 스타이펜드’로 불리는 연구생활장려금(석사 월 80만 원, 박사 월 110만 원)을 제공하고 ‘석사 특화 장학금’도 도입해 매년 1000명에게 연간 500만 원을 지원한다. 이공계 대학생 국가장학금과 대통령 과학장학금 역시 확대한다.
이공계 학생들의 군 복무로 연구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올해 처음으로 정보보호특성화대학 학부생을 대상으로 ‘사이버전문사관제도’가 마련됐다. 첫해인 만큼 10명을 선발한 뒤 제도 정착 상황을 지켜보며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도 내년부터 확대해 시행한다. 기존에 학사를 대상으로 연간 25명을 선발했으나 내년부터는 석사도 연간 25명을 선발한다.
여성의 연구 활동 공백 또한 줄이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2028년부터는 육아와 연구 병행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든 연구기관에 근로시간 단축 제도 및 재량 근로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공공연구기관의 보직목표제를 신규로 도입해 현재 10%인 여성 리더 비중을 20%까지 확대한다.
정부는 또 이공계 연구자들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 박사후연구원 채용을 10년 이내에 2900명까지 늘리는 것과 동시에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적정한 기관에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국가연구원제도(가칭)’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연구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 체계도 구축한다. 올해 연 700만 원까지 확대된 직무발명보상 비과세 혜택을 더 늘리는 한편 성과조건부주식(RSU)과 같은 성과를 공유하는 지분 보상 제도를 운영해 과학기술 인재의 스타트업 생태계 진입을 유도할 방침이다.
내년 1월부터는 박사후연구원도 과학기술인공제회 가입 대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부 출연 연구소 중심이었던 데서 벗어나 박사후연구원을 비롯해 중소기업 종사 과학기술 인력으로 회원 자격을 확대해 과학기술 인재의 복지 혜택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현재 모호한 지위인 박사후연구원의 수입과 복지를 보장하는 등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접근이다.
아울러 대학의 경우 정년 후에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고 출연연은 ‘우수 연구원 제도’와 ‘정년 후 재고용 제도’의 수혜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61세 정년 이후에도 4년가량 연장되는 효과가 있다. 과기정통부는 은퇴했거나 고령 과학자가 중소기업이나 해외 공적 원조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예우를 높여 과학자가 존중받는 문화도 조성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훈장과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등 우수 연구 성과를 창출한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포상을 확대하고 과학기술 문화 콘텐츠와 프로그램 지원 사업을 확대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첨단산업 해외 인재 유치·활용 전략’도 발표됐다. 정부는 해외 인재의 국내 입국과 취업·정주까지 지원하는 ‘K테크 패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별비자를 신설해 입국 1년 후 자유로운 이직과 5년 장기 체류 등이 허용되며 전세대출 한도도 내국인 수준인 5억 원까지 보장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첨단산업 해외 고급 인재 1000명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외국인 인력을 적극 유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내 핵심 기술 유출 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해외 인재들의 기술 유출 가능성은 기우에 가깝다”며 “기업들의 사전 수요 조사 결과 반도체 파운드리 등 기술 전수로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고 전했다.
이번 전략에 대해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출연연 등 교육·연구기관 지원이 병행돼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조언이 나왔다. 김무환 전 포스텍 총장은 “연구자 개인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교육기관인 학교와 연구소 등의 자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지원 대책도 뒤따라야 이공계로의 인력 유입과 우수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