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왜 정년을 늘리는 대신에 고령자에 대한 ‘고용 확보 의무’ 같은 조치를 시행했을까요? 이는 선택지를 다양화해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2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회 리워크 컨퍼런스’에서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이 전개하는 고령자 고용정책에서 주목할 부분으로 ‘기업 부담 최소화’를 꼽았다. 김 연구원은 이날 ‘일본 정부의 고령자 고용정책 현황 및 문제점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은 1994년 노령연금을 지급하는 시점을 65세부터로 늦추면서 기업들이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할 수 없도록 했다. 공적연금의 지급개시 연령과 은퇴하는 시기를 맞춰 ‘소득 절벽’을 막으려는 조치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정년을 65세 미만으로 설정한 기업에 △정년 연장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 폐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시행하도록 했다. 기업 대다수는 계속고용제도를 선택했다.
김 연구원은 “계속고용제도 도입 배경에는 일본적 경영의 특징인 연공서열형 임금제도가 있다”며 “정년을 늘리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만큼 많은 기업이 일단 고용관계를 종료시킨 뒤 새로운 노동조건으로 재고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이 고령자를 재고용하면서 일률적으로 임금을 깎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일본 사례를 보며 고령자의 71.5%가 재취업 후 임금이 줄었지만 정년 연장이나 폐지 등이 기업의 이익으로 연결된다고 판단되면 고령자의 임금 수준을 높이고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 확보 조치 시행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률정년제’를 채택한 기업 중 60세를 정년으로 규정한 곳은 2013년 83.0%에서 2021년 72.3%로 10.7%포인트 줄었다. 반면 65세 이상으로 정년을 규정한 곳은 같은 기간 12.5%에서 24.5%로 약 2배로 늘었다. 정년 연장을 포함한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시행하는 기업은 99.9%에 이른다.
고령자의 취업률은 점차 늘고 있다. 직접적으로 고용 확보 조치의 혜택을 받은 60~64세의 취업률은 2005년 52.0%에서 계속 증가해 2022년 73.0%에 달했다. 김 연구원은 “수치로만 따지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자영업자 비율이 약 9%인 일본과 23~24%인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다”며 “고령자 대다수가 자영업자로 파악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취업률에 포함된 이들 상당수가 기업에 고용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고령자 고용 증가는 사회보장 재정 안정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60세 이상 취업자가 2007년 약 1000만 명에서 2023년 약 1468만 명으로 늘면서 이들이 납부한 직접세 및 사회보험료도 같은 기간 약 7조 엔에서 약 14조 엔으로 증가했다.
일본은 현재 65세보다 더 나아간 ‘70세 취업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2021년 4월 시행된 법안에는 근로자들이 70세까지 일할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기업들은 △정년 연장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해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기업이나 프리랜서를 희망하는 자에게 업무를 위탁하거나 △유상자원봉사 등 자사와 관련된 사회공헌사업에 종사하도록 연결하는 등의 옵션도 추가했다.
일본의 저출생·고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2023년 일본의 고령화율은 29.3%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100세 이상인 고령자도 9만 명을 넘어섰고 2042년이면 65세 이상이 약 4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가능인구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비경제활동인구(고령자, 전업주부, 장애인 등)가 경제활동에 나서도록 제도 등의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고령자 고용 안정이 청년층의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관해 김 연구원은 ‘베테랑’과 청년들이 짝을 이뤄 일하는 ‘페어(pair) 취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고령자와 청년, 고령자와 장애인, 고령자와 외국인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페어 취업을 발굴해볼 수 있다”며 “일터에서 고령자와 청년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확립하고, 상호 대체 관계인 일자리보다 상호 보완적인 ‘세대 상생형’ 일자리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 연구원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무엇보다 고령자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다 행복하게 나이 들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은퇴자의 ‘인생 2모작’도 중요하지만 1모작이 잘 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