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010130) 회장이 기습적으로 2조 5000억 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영풍·MBK파트너스는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저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고려아연이 ‘국민주’를 거론하면서 과거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KCC로부터의 경영권 공격에 대응할 목적으로 진행했던 ‘국민기업’을 위한 유증과 닮은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법원은 KCC 측이 제기한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여 제동을 걸었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는 최 회장 측이 결정한 유증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MBK가 가처분 신청을 한다면 경영권 방어와 증자 목적 등을 두고 법적 공방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 떠올리는 사례는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소송이다. 당시 고(故) 정상영 KCC 명예회장 측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0.78%를 장내에서 매집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자 현 회장 측은 반격 카드로 “국민이 주인인 기업을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1000만 주를 유증하기로 깜짝 발표했다. 당시 발행주식(561만 주)의 2배에 가까운 막대한 물량인 데다 신주 가격도 기준 가격보다 30% 할인된 가격을 제시했다. KCC의 대규모 유증 참여를 막기 위해 1인당 청약 한도도 300주로 제한했다. 이번에 고려아연이 할인율 30%, 청약 한도를 3%로 제한한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에 KCC 측은 “이를 저지해달라”며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했다. 경영권 방어 자체가 회사와 일반 주주에게 이익이 되면 예외적으로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한 신주 발행이 허용되지만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당시 재판부는 “이번 유상증자는 회사 경영을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기존 대주주와 현 이사회의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로 현 회장이 국민이 주인인 기업을 만들겠다고 내세운 ‘현대그룹의 국민기업화’는 무산됐다. 다만 이후 KCC가 5%룰 위반 등으로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주식 처분명령을 받으면서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