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암 진단을 받은 A 씨는 통원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가까운 자녀의 집으로 이사했다. 치료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간 살던 연립주택을 손해 보고 팔았다. 세금 고지서가 날아왔지만 ‘손해를 보고 팔았는데 무슨 세금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A 씨는 수술 이후 계속된 항암 치료로 수개월이 지나서야 세금 독촉장을 들고 세무사를 만나 상담했다. 하지만 “집 살 때 계약서가 없으면 인정받기 어렵고, 이미 이의 신청할 기간도 지났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A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체납 담당 공무원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납세자보호담당관실 상담을 권유받았다. 그때부터 반전이 일어났다. 딱한 사연을 들은 납세자보호담당관은 사실관계를 하나씩 확인해 A 씨에게 유리한 자료를 직접 수집했다. 이어 고충 민원 처리를 위해 납세자보호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위원회는 계약서가 없어 취득 금액을 알 수 없지만 은행의 대출 평가 서류 등을 근거로 실제 취득 금액이 양도 금액보다 높아 차익이 없다고 판단해 체납된 세금을 취소했다.
국세청이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 중인 고충 민원 제도의 실제 사례다. 영세 납세자가 법률상 구제 절차인 불복 청구 등을 기한 내 이용하지 못해 구제받을 방법이 없는 경우 납세자보호담당관에게 고충 민원을 신청할 수 있다. 고충 민원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한 경우 납세자보호위원회가 열린다. 위원회는 납세자보호담당관을 제외한 모든 위원을 민간 위원으로 구성해 납세자의 권익을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
또 다른 납세자 권익 보호 제도로는 ‘권리 보호 요청’이 있다. 납세자가 세무조사 등 국세 행정 집행 과정에서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받은 경우에 신청할 수 있다.
B법인은 이 제도를 활용해 중복 세무조사를 피했다. 한 지방 국세청이 ‘B사의 사주가 법인 자금을 횡령했다’는 수사 결과를 통보받고 법인 자금 유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B사는 이전 세무조사에서 사주가 돈을 빌려 갔지만 이자를 제대로 받고 있다며 계약서와 금융 증빙을 제출해 정상 거래로 인정받은 바 있다. 몇 년 만에 같은 내용으로 세무조사를 받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한 B사는 고민 끝에 ‘권리 보호 요청’을 했다.
납세자보호위원회는 수사기관에서 통보받은 자료를 확인하기 위한 세무조사 대상 선정은 적법하다고 봤다. 하지만 내용을 종합해 검토한 결과 이전 세무조사에서 확인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탈세로 볼만한 명백한 자료가 새롭게 발견되지 않았고 중복 세무조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세무조사를 즉시 철회하도록 했다.
‘국선 대리인’을 이용한 불복 청구도 납세자 권리를 구제하는 대표 사례다. 갑작스러운 매출 급감으로 부도 상태에 이른 회사를 살리기 위해 C 씨는 직원들과 함께 주식회사 D를 인수하고 대표이사에 올랐다. 어느 날 세무서로부터 법인세 신고를 안 했다는 안내문을 받았지만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 주고 영업을 위해 거래처로 뛰어다니느라 세무 업무를 챙길 시간이 없었다.
몇 달 후 C 씨는 세무서로부터 ‘법인세를 신고하지 않아 추계로 과세했고 그에 따른 소득은 대표에게 귀속돼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안내와 함께 고지서를 받았다. 수개월째 월급도 못 받았는데 본인도 모르는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용이라도 아껴볼 생각으로 국세청 홈택스로 직접 이의 신청하는 방법을 알아보던 중 ‘영세 납세자에게 세무 대리인을 무료로 지원한다’는 안내를 보고 납세자보호담당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임된 국선 대리인은 전 대표가 작성한 계약서와 금융 자료 등 증거를 수집해 사실상 소득 귀속자가 전 대표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C 씨의 세금을 취소하라는 심사위원회의 인용 결정을 이끌어냈다.
국세청은 과세 처분에 대한 과세전 적부심사와 이의 신청, 심사 청구 과정에서 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한 영세 납세자에게 세무사·공인회계사·변호사를 무료로 지원하는 ‘국선 대리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국선 대리인 지원 건수는 2002건에 달한다. 국선 대리인 선임 시 인용률은 19.5%로 세무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은 경우(6.9%)보다 훨씬 높아 그 역할과 중요성이 입증되고 있다.
국세청은 국가 재정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공평 과세를 실현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세심하게 국세 행정을 운영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권리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납세자의 억울함이 없도록 권익을 적극 구제하고 보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