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회 공전에 '특별법' 안갯속…반도체 위기라더니 보조금은 또 빠져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

정부, 반도체 인프라에 2.8조

용인 등 송전선 지중화·용수 지원

日의 추가 보조금 언급하면서도

정부는 'WTO 위반' 이유로 제외

野 '주52시간 예외' 반대에 발목

법안처리 일러야 다음달에나 가능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경기도 성남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경기도 성남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정부가 지난 27일 내놓은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 방안’ 보도 자료의 제목은 ‘반도체 위기, 민관이 합심하여 돌파한다’로 돼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상황을 ‘위기’로 정의한 것이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갈등, 중국의 기술 추격에 신음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임기가 시작되면 미국 현지 공장 건설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다시 논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리 경제와 산업은 어느 때보다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며 “미국 신정부 출범 이후 보편 관세를 비롯한 정책 기조가 현실화하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대응 방식이다. 이번 대책에서는 반도체 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직접 보조금 지원이 또 빠졌다. 정부는 용인과 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선 지중화와 용수 등 인프라 구축에 최소 2조 8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세액공제 중심에서 한발 나아가 인프라 비용을 본격적으로 대주는 것인데, 여전히 시설 투자 및 연구개발(R&D)에 대한 직접 보조금은 꺼리고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내야 하는 지중화 사업비를 추가로 대준다. 용인 산단의 분담 비율을 적용하면 두 회사가 지중화 사업비(1조 8000억 원)의 70% 이상을 부담해야 하지만 정부가 절반(6300억 원) 넘게 지원한다. 용인 산단 송전망에 한국전력이 투자하기로 한 금액(7000억 원)과 한국수자원공사의 통합 용수로 지원금(1조 4808억 원)을 더하면 정부 지원 규모는 더 커진다.

27일 경기도 성남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용수 협약식 및 관계기관·공공기관 간담회' 참석자들이 협약을 맺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김완섭(뒷줄 왼쪽부터) 환경부 장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27일 경기도 성남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용수 협약식 및 관계기관·공공기관 간담회' 참석자들이 협약을 맺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김완섭(뒷줄 왼쪽부터) 환경부 장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반도체의 기반시설에 대해 정부가 재정을 늘린 것은 이전 대책보다 나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기업의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도 올라간다. 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 장비 등 R&D를 위한 시설 투자도 포함하기로 했다. 바뀌는 세제 혜택을 적용하면 삼성전자가 받는 세액공제 금액은 2000억 원에서 4조 원으로 커진다.

관련기사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쏟아붓기로 한 투자액(482조 원)을 고려하면 정부 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직접 보조금을 골자로 한 일본의 반도체 지원 대책을 참고 사례로 인용했다. 일본은 이달 22일 발표한 ‘종합경제대책’에서 2030년까지 총 10조 엔(약 90조 8000억 원)을 투입해 자국의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차세대 반도체 R&D와 전력 반도체 양산 투자에 6조 엔의 직접 보조금이 지급된다. 일본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라피더스가 2027년부터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의 추가 출자 지원 가능성도 언급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직접 보조금을 포함한 일본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을 예시 사례로 넣고서 정작 우리 대책에는 직접 보조금 지원과 관련한 내용이 빠져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직접 보조금 지급을 놓고 정부 부처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국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반도체 지원이 힘을 받으려면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반도체특별법 추진은 난항을 겪고 있다. 야당에서 반도체특별법의 R&D 인력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삽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흐름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 고숙련 인력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를 대폭 완화해 적용한다. 미국은 연 10만 7432달러를 버는 고소득 근로자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를 자율 운영하고 있다. 일본도 연 1075만 엔 이상을 버는 전문직에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반도체 지원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만 이대로라면 일러야 다음 달에나 반도체특별법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는 이달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를 열어 28일 반도체특별법 본회의 처리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정부 역시 글로벌 무역·통상 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재부의 경우 직접 보조금 제외에 대해 보조금 지급 조항을 삽입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조항을 위반할 우려가 있다는 언급을 아직도 공공연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미국이나 중국 모두 개별적인 협상을 통해 보호주의로 나아가고 있고 WTO 체제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가용 재원이 없다면 차라리 이해가 가능하겠지만 WTO 위반만을 (반대 이유로) 강조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를 고려하면 정부가 말처럼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날 보도 자료에도 정부의 주체적인 노력 의지보다는 ‘국회와 협의’를 전제로 반도체 지원에 나서겠다는 표현이 곳곳에 담겼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향후 트럼프 행정부 집권 후 상황이 불투명하다”며 “정부가 계속 반도체 업황을 예의 주시하고 추가 대응책을 미리 준비해놓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세종=서민우 기자·세종=심우일 기자·세종=조윤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