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정부 아직도 "완만한 회복"…빠른 정책전환 없인 침체 가속

[생산·소비·투자 '트리플 감소']

금리 인하에도 경기판단 유지

건설업 생산 금융위기후 최악

경기동행지수 8개월째 하락세

수출도 트럼프 리스크에 위태

재정·통화정책 효율적 조합필요

수출입 화물이 29일 부산항 신선대·감만·신감만부두에 쌓여 있다. 연합뉴스수출입 화물이 29일 부산항 신선대·감만·신감만부두에 쌓여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29일 통계청의 ‘10월 산업활동동향’이 발표된 뒤 “‘완만한 경기회복’이라는 큰 흐름에서의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생산은 상대적으로 괜찮고 소비와 투자 역시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플러스와 마이너스 항목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전날 급격한 경기 둔화 가능성을 이유로 깜짝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내년과 내후년 성장률 예측치로 각각 1.9%와 1.8%를 제시했음에도 상황 판단이 바뀌지 않았다. 기재부의 설명대로라면 한은이 금리 인하를 할 이유가 적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정부의 인식이 지나치게 한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의 경기 흐름이 올해를 넘어 내년 초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긴장감을 갖고 상황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내년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로 각각 1.8%와 1.7%를 내놓았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한은이 내년도 성장률 예상치로 1.9%를 제시했는데 이 역시 다소 긍정적인 전망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된 산업활동동향을 봐도 경기 상황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적지 않다. 내수의 가장 약한 고리로 꼽히는 건설업 생산만 봐도 6개월 내리 줄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6월 이후 16년 4개월 만에 가장 긴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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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종합지수 순환 변동치는 지난달 기준 전월과 동일한 98.1로 8개월 연속으로 내림세와 보합세를 거듭하고 있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돌면 현재 경기가 후퇴 국면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향후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종합지수 순환 변동치는 전달보다 0.1포인트 떨어진 100.6을 기록했다. 소매 판매가 2개월 연속 줄고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처럼 서민 경기와 관련이 깊은 서비스업의 생산이 전월 대비 내림세를 보인 것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경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반도체 수출이 언제까지 버틸지도 관건이다. 시장조사 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1월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고정 거래 가격은 1.35달러로 전월(1.7달러)보다 20.6% 하락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반도체 범용 제품 저가 판매를 늘리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따라 수출 경기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10~20%의 보편관세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이 최대 93억 달러 감소해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도 “한국은 고사양의 반도체를 수출해 중국과 품목상 크게 겹치지 않는다”면서도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져 수출이 좋아질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경기 부진에 세금도 덜 걷히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국세수입은 293조 6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조 7000억 원 줄어들었다. 세수 진도율은 79.9%로 역대 최대의 세수 펑크가 났던 지난해 10월 수치(76.2%)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전문가들은 확장 재정을 통한 경기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3%로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통화정책만으로는 내수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는 “금리가 내려간다고 해도 소비보다 주택 쪽으로 자금이 이동해 소비 확대 여력이 기대보다 많이 확보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재정 확대에 당위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단순한 재정 확장보다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예산을 집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중장기 재정 건전성이 계속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금 살포식 재정 운용은 자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책 조합 측면에서도 재정·금융·통화 당국 간 공조가 보다 면밀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근까지의 상황을 보면 재정 당국에서는 긴축 재정을, 금융 당국에서는 대출 규제 강화를, 통화 당국은 고금리 정책을 펼쳐왔다”며 “각론에서 보면 각 부처의 대응에 타당성이 있었지만 종합적으로 따지자면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통화·재정 긴축을 병행하는 정책 조합을 펼친 셈”이라고 진단했다.


세종=심우일 기자·세종=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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